[ 시(詩)가 있는 아침 ] - '손톱 발톱 머리카락 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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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희중(1960~ ), '손톱 발톱 머리카락 털' 전문

내가 살아 있구나 손톱이 자라고

몸이 무언가 하고 있구나 발톱이 자라고

쓸데없이 자라고 빠지는 것들

저희들끼리 몰래 자라고 빠지고

혹시 내가 저를 기르고 싶어지지 않을까

기다리며 중얼거리며

그것들은 내 몸의 가장 먼 곳에 있다

변두리에 산다 바깥을 향하고

무서워라 발톱은 결국 신발을 찢고

손톱은 발바닥을 할퀴고

머리카락은 하늘을 가리고

털은 온몸을 죄고 결국

내가 죽은 후에도 더 오래 자랄 것이다



손톱.발톱.머리카락.털은 몸의 변두리에 사는 신체의 부속물이다. 호흡기관이나 소화기관 따위에 비하면 생명 유지에 별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시인은 오히려 이것을 통해 몸이 살아 있다는 것, 몸이 무언가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것들은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스스로 자라는 것이며 인간이 야생으로 살았던 원시의 유적,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 있는 몸의 유적이기 때문이다.

김기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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