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주의 소곤소곤 연예가] 별걸 다 기억하는 남자, 홍경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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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터프한 목소리의 가수 홍경민. 평소 성격 좋고 친구 많기로 유명하지만, 유독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그의 진가가 돋보인다. 그 이유는 바로 빛 바래고 흐릿한 옛 추억들을 정확히 기억해 내기 때문이라는데. 당사자들조차 가물가물한 소싯적 시시콜콜한 사연도 그의 입술을 통하면 마치 타임머신을 탄 듯 그때 그 장소로 데려다 준다고.

"친구들이 별걸 다 기억한다고 깜짝 놀라는데, 제가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추억'이랍니다. 그 추억들이 모여 음악이 되고, 오늘의 제가 되었죠."

그 중에서도 가수 홍경민을 만든 잊지 못할 추억의 한 조각.

때는 2000년 봄, 모 대학축제 공연에 초대돼 무대에 오르자 500석 이상 되는 객석이 텅 빈 것 아닌가. 이유인 즉 학교측 진행 실수로 미처 홍보가 되지 않았던 것. 아무리 유명하지 않은 신인가수일지라도 관객 없이 노래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녔다. 그러나 눈 질끈 감고 마이크를 잡은 그는 맨 앞자리 무뚝뚝한 남자 몇몇 관중을 위해 무려 1시간을 열창했다.

"처음엔 막막하더니 어느새 보니까 제가 객석에 뛰어 내려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더라고요. 그 몇 안 되는 관객들도 난생 처음 보는 신인가수의 노래를 꼭 들어야 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런데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고 끝까지 함께 하는데 나중엔 오히려 제가 고맙더라고요. 그 후로 어느 무대에서건 최선을 다해 최고가 되려고 노력해요."

얼마 뒤, 불멸의 히트곡 '흔들린 우정'으로 정상에 올랐다. 가창력은 물론, 입담과 운동신경도 뛰어난 홍경민은 방송 3사 예능 프로그램까지 장악했는데 한번은 지하철 세트에 사람을 가득 채우고 과연 누가 가장 짧은 시간에 이들을 뚫고 빠져나가는가 하는 기막힌 도전을 하게 되었다.

"저보다 덩치가 훨씬 큰 남자들이 빽빽하게 버티고 있더라고요. 빨리는 커녕 과연 빠져 나올 수는 있을까 싶었는데 갑자기 모두들 저를 보고 웃더라고요. 그러더니 혹시 기억하냐고. 자기네들이 예전 봄 축제 때 앞에 앉아 공연 봤던 체육과 학생들이라고. 그 친구들이 길을 터 줘서 무려 6초 신기록을 세웠어요."

홍경민에게 추억은 과거형이 아니라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미래형 단어. 지금, 잊고 있던 추억을 꺼내 미래의 나를 만나보자.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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