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무대 큰 승부 … 이세돌, 7년 만에 이창호 꺾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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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세돌(사진) 9단이 15일 열린 제6기 한국물가정보배 결승 2국에서 이창호 9단을 꺾어(159수, 흑 불계승) 2대0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 상금 3000만원의 작은 무대지만 이번 대결은 팬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이세돌은 7년 전인 2003년 LG배 결승에서 이창호를 꺾은 이후 2004년 왕위전과 2009년 KBS바둑왕전 결승에서 모두 졌다. 이걸 두고 “이세돌 9단이 아직 이창호 9단만은 넘지 못했다”는 시각과 “그렇지 않다. 이세돌 9단이 확실하게 정상에 선 2006년 이후 맞붙을 기회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는 두 개의 시각이 팽팽했다. 그렇다면 이번의 2대0 완승은 이세돌의 우위를 증명하는 것일까(이번 승리에도 이세돌은 상대 전적에서 이창호에 23승31패로 뒤지고 있다).

이 점에 대해 이세돌 9단은 “긴 시간의 대국이라면 모를까 속기라서 큰 의미를 두기엔 부족하다 ”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이세돌 9단은 올해 목표를 묻자 “무엇보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다”고 말했다.

◆이세돌 9단 명국선 출간=‘아마 5단 실력의 아버지가 동네(전남 신안군 비금도) 아이들을 모아놓고 바둑을 가르쳤다. 여섯 살 세돌은 숫기가 없어 아이들이 오면 슬그머니 사라졌고 형 차돌(훗날 서울대 입학)만 바둑을 배웠다. 나는 피해 다니는 세돌을 억지로 끌어다 앉혀 놓았 다. 세돌은 얼마 안 가 아이들을 모두 추월했고 형마저 따라잡았다. 세돌은 저녁 어스름마다 텃밭에서 일하시는 어머니에게 쪼르르 달려가 오늘도 한 급 올랐다며 자랑하곤 했다’.

이세돌 9단의 누나 세나(이화여대 재학 시절 아마 강자였다)씨가 쓴 ‘이세돌의 바둑 입문이다.’ 사금파리처럼 날카롭고 맹수처럼 사납게 세계바둑을 휘젓고 있는 승부사 이세돌의 어린 시절이 감미롭다. 불과(?) 27세의 이세돌 9단도 이미 먼 길을 떠나온 것인가. 최근 출간된 『이세돌 명국선』(파랑새 미디어)은 이세돌 9단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독특한 체취의 깊이 있는 해설도 돋보이지만 중간중간 등장하는 천재 바둑기사 이세돌에 대한 얘기를 읽는 재미도 좋다. 지난해 휴직 기간에 이 책을 준비한 이세돌은 서문에서 “치열한 승부 이전에 마냥 즐거운 놀이였던 그 시절이 가끔은 그립습니다”고 말하고 있다. 어린 세돌이 가장 좋아했던 심부름은 아버지의 막걸리 사오기. 당시 가게에서 파는 막걸리 뚜껑에는 조그만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막걸리를 사오면서 그 틈으로 조금씩 흘려 마신 막걸리 맛이 환상적이었기 때문이란다.

‘세돌은 8세 무렵부터 서울의 어린이 대회에 참가하기 시작했는데 바람이 불어 배가 뜨지 못할 때를 대비해 최소 3일의 여비를 마련해야 했다. 형편이 어려워 상경 때마다 어머니가 여기 저기 돈을 빌렸다. 그 돈을 갚기 위해선 세돌이 꼭 우승해서 상금을 받아야 했다. 아버지와 세돌은 전장에 나가는 병사처럼 결연한 각오로 상경했고 우승을 하지 못할 때는 죄인마냥 풀 죽어 돌아오곤 했다’.

이세돌 9단의 어린 시절은 특별하다. 그것이 지금의 실전적이고 격렬한 기풍을 만들어냈는지도 모른다. 모두 3권으로 된 책은 각 권 3만3000원. 이세돌다운 비싼 값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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