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신상훈 사장도 실명제 위반 의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7면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에 이어 신상훈 사장과 신한은행 비서실도 금융실명제를 위반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실로 드러날 경우 신한은행은 조직적으로 차명계좌를 만들어 불투명한 자금 거래를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정치권에서 의혹이 불거져 현재 금융감독원의 조사를 받고 있는 라 회장과 달리 신 사장과 비서실의 금융실명제 위반 의혹은 신한은행 스스로 제기한 문제다.

◆조직적 실명제 위반 의혹=신한은행은 지난 2일 전임 행장이었던 신 사장을 검찰에 고소하면서 그가 2005~2009년 다섯 차례에 걸쳐 은행 창립자인 이희건 명예회장에게 자문료를 지급하는 것처럼 꾸며 15억6600만원을 횡령한 혐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은행이 제출한 고소장에 따르면 자문료는 이 명예회장 명의의 신한은행 계좌로 입금됐지만, 실제로는 신 사장이 이 돈을 받아 개인적으로 썼다는 것이다. 특히 그가 은행장으로 재임하던 2005~2009년엔 이 명예회장의 계좌가 매년 개설됐다가 자금이 모두 인출되면 폐쇄되는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운용됐다는 게 은행 측의 설명이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또 2007년 이후엔 비서실 직원 및 그 가족의 명의를 이용해 치밀하게 자금세탁을 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인출했다며 수사가 진행되면 관련 자료를 제출하겠다고 덧붙였다. 만일 신한은행 비서실이 차명계좌를 개설한 경우 이를 만든 창구 직원과 이를 지시한 비서실 직원은 과태료 처분과 함께 금감원의 징계를 받을 수 있다.

신 사장은 “명예회장의 자문료를 횡령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다만 “자문료는 비서실에서 주로 관리했다”고 설명했다. 신 사장 역시 횡령 의혹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받는다 해도 비서실의 차명계좌 운용에 관여하거나 이 사실을 알았다면 징계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익명을 원한 금융계 관계자는 “검찰 수사 등을 통해 신한은행장 비서실의 자금 관리 상황이 구체적으로 밝혀진다면 신 사장만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사태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9일 나고야에서 이백순 신한은행장 측이 재일동포 주주들에게 사건 경위를 설명하자 신 사장은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나”고 반발했다.

◆이사회의 쟁점은=14일 열리는 신한지주 이사회에선 승자와 패자가 명확히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라 회장과 이 행장 입장에선 “신 사장의 비리 혐의가 중대하기 때문에 대표이사직을 그대로 유지해선 안 된다”는 점을 설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표이사직을 유지할 경우 직위를 이용해 비리 혐의에 대한 증거를 인멸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라 회장 측은 사외이사들에게 신 시장의 비리 혐의를 충분히 설명한 뒤 신 사장의 대표이사 해임안을 상정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신 사장은 “나를 고소한 사람을 무고죄로 다시 고소하면 그를 해임할 것이냐”고 되받았다. 또 “나를 해임한 뒤 무혐의가 나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도 했다. ‘무죄 추정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라 회장도 지난해 5월 전 신한은행 비서실장 강모씨 등과 함께 재일동포 주주 박모씨에게 고소당한 적이 있다. 박씨가 맡긴 돈 146억원을 횡령했다는 이유였지만 라 회장은 검찰 조사 결과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라 회장은 지난해 3~6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 전달한 50억원이 문제가 돼 대검 중수부의 내사를 받았지만 역시 무혐의 처리됐다. 당시 라 회장에 대한 대표이사 해임 움직임은 없었다.

이번 이사회에서 신 사장의 해임안이 상정되지 못하거나 부결될 경우 라 회장과 이 행장은 역풍을 맞는다. 라 회장의 조직 장악력도 크게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반면 신 사장이 해임되거나 직무 정지를 당하면 라 회장은 조직 장악력을 강화할 수 있게 된다.

 김원배·권희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