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일본 효고현 도요오카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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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도요오카 황새고향공원에서 사육된 황새가 9월로 예정된 야생 방사에 앞서 비행훈련을 받고 있다. [사진 제공=도요오카 황새고향공원]

일본 효고현 도요오카(豊岡)시에 가면 1960년 촬영한 흑백사진 한 장을 곳곳에서 마주치게 된다. 밀짚모자를 쓴 농부가 소를 몰며 발목이 잠길락말락한 강물 위를 한가롭게 걷고 있는 목가적인 풍경이다.

인상적인 것은 강물에서 먹이를 쪼고 있는 황새 10여 마리가 농부를 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불과 40여 년 전만 해도 자연과 인간이 공생했음을 보여주는 사진이다. 이 모습을 복원하기 위해 도요오카의 관.민이 손잡고 10여 년째 땀을 흘리고 있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텃새로서의 황새는 71년 이후 멸종 상태다. 볼 수 있는 것은 철새로 방문하는 황새뿐이다. 시베리아에 사는 황새가 겨울을 나기 위해 가끔 일본열도에 들르는 것이다. 황새는 세계적으로도 2500마리밖에 없는 희귀종이다.

도요오카의 4만7000여 주민은 92년 황새를 일본 땅에 복원하자는 운동을 시작했다. 사육장에 가둬놓고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야생으로 되돌린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개체 수를 늘리는 것이 시급했다. 이를 위해 시베리아 황새 몇 쌍을 들여와 번식과 인공사육을 시작했다. 지금은 100여 마리가 넘었다. 99년엔 600억원의 예산을 들여 150ha에 사육 및 연구시설인 '황새 고향 공원'을 만들었다.

문제는 청정 지역이 아니면 살지 않는 황새의 서식환경을 가꾸는 일이었다. 농약으로 오염된 토양과 수질을 40년 전의 상태로 되돌려놓지 않으면 황새 복원은 불가능했다. 도요오카의 주민들은 황새 복원을 위해 모두 유기농으로 전환했다. 황새들의 먹잇감인 미꾸라지 등 작은 물고기들이 드나들기 쉽게 일일이 논두렁 옆에 계단식 수로를 만들었다.

시립 황새문화관의 마쓰시마 고지로(松島興治郞)는 "처음에는 주민 반대가 심했지만 지금은 도요오카의 농산물이 친환경 상품으로 전환되면서 고가에 팔리고 소득 증대에도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마지막 남은 일은 인공 사육된 황새를 자연의 품으로 되돌리는 일이다. 사육사들은 이를 위해 황새에 비행훈련을 시키는 등 잃어버린 야성을 되살려 주기 위해 전력을 쏟고 있다. 황새고향공원 측은 올 9월을 목표로 잡고 있다. '황새가 살 수 없는 환경에선 사람도 살 수 없다'는 신념 하나로 똘똘 뭉친 도요오카 주민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을지 주목된다.

도요오카=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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