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로 지고 나서도 뻔뻔했던 히딩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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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겼을 때는 모든 게 잘 돌아간다. 리더십이 필요한 때는 팀이 패했을 때다.

역대 축구대표팀 사령탑들은 어떻게 난관을 극복했을까.

2002년 한·일 월드컵을 1년 앞두고 2001년 5월 개막한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한국은 프랑스에 0-5로 참패했다. 지휘봉을 잡고 있던 거스 히딩크 감독은 고개를 숙이는 선수들에게 호통을 쳤다.

이래도 계속 강팀과 붙을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당연하다. 그래야 기량이 향상된다”고 말했다.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는 감독의 모습에 선수들도 용기를 냈다. 한국은 이틀 후 멕시코를 2-1로 눌렀다.

그로부터 석 달 후 열린 체코와의 원정 평가전에서 한국은 또다시 0-5로 패했다. 히딩크에게 오대영이라는 별명이 붙게 된 경기였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히딩크는 “좋은 경험을 해서 행복하다”고 했다. 그는 뻔뻔할 정도로 당당했다. 히딩크는 ‘다음 경기에 또 패하면 우리는 모두 해임될 것’이라고 걱정하는 네덜란드인 측근에게 “우리 목표는 월드컵이다. 그 이전 경기는 모두 연습게임”이라며 위로했다.

아드보카트 감독도 히딩크와 비슷하다. 아드보카트를 보필한 홍명보 감독은 “아드보카트는 코칭스태프와 목소리 높여 논쟁을 벌이고 때로는 노심초사하기도 하지만, 선수들 앞에서는 한 번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허정무 전 대표팀 감독도 2010 남아공 월드컵 16강이라는 결실을 거두기 위해 숱한 위기를 넘어야 했다. 2008년 상하이에서 열린 북한과의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가까스로 1-1로 비긴 후에는 경질 압력에 시달렸다. 이때 허 감독은 박지성을 주장으로 발탁하며 팀 분위기를 추슬렀다. 형식적으로 주장 완장만 채워준 게 아니라 주장 박지성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선수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았다.

7일 이란전 패배는 앞으로 조광래 감독이 겪어야 할 시련의 일부분이다. 조 감독은 경기 후 “최선을 다해 뛰어 준 선수들이 고맙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향후 그가 어떤 모습으로 선수들 앞에 나타날지 궁금하다. 

이해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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