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 ‘해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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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영화 ‘해결사’의 한 장면. 경찰 출신으로 흥신소를 운영하는 태식(설경구)은 하루 아침에 살인 누명을 쓰고 쫓기는 신세가 된다. [외유내강 제공]

영화 ‘해결사’를 보면서 드는 첫 느낌은 기시감(旣視感)이다. ‘공공의 적’‘강철중’에 노출됐던 배우 설경구의 이미지가 상당 부분, 상당 시간 동어반복되기 때문이다. 그가 연기하는 전직 형사이자 현직 사설탐정의 이름을 강태식이 아닌 강철중이라고 바꿔도 크게 이상하지 않다.

어쩌면 강철중 형사가 퇴직하면 형사 시절 노하우를 이용해 저렇게 밥벌이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니까. 말보다 주먹이 앞서고 본능이 논리적 사고를 뛰어넘던 강철중은 머리를 길게 기르고 홀아비 냄새 풀풀 나는 흥신소 사장이 됐고, 그 모습은 과거의 출연작들이 그랬듯 배우 설경구에게 가장 잘 어울려 보인다.

‘해결사’는 태식이 함정에 빠지는 걸로 시작된다. 불륜 사건 의뢰를 받고 모텔에 갔다가 살인사건 용의자로 몰린다. 과거 동료 필호(이정진)가 놓인 덫에 걸린 것. 태식은 처음엔 자기를 곤경에 빠뜨린 사람이 필호인지도, 필호가 자기한테 왜 그러는지도 모른다. 그저 자신을 조이는 올가미에 무지막지한 맨몸액션으로 맞설 뿐이다.

기시감은 양날의 칼이다. 설경구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강철중 캐릭터는 영화에 안정감을 주긴 하지만 동어반복은 이 영화를 범작 이상으로 끌어올리지 못한다. ‘해결사’가 좀더 정교하게 이야기를 다듬었다면 이런 결점쯤은 우리나라에서 연기 잘하기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이 배우의 노련함에 묻혔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는 빠듯한 시간 내에 정신 없이 풀어 재낀 후 검산 과정을 생략한 수학시험 답안지를 보는 듯하다. ‘해결사(이정진)가 맡은 일을 처리하기 위해 또 다른 해결사(설경구)를 함정에 빠뜨린다’는 기둥 플롯은, ‘필호는 왜 스스로 일을 해결하지 않고 굳이 태식을 끌어들였을까’에 대한 답을 주지 못함으로써 무너지고 만다. 태식이 누군가의 모함에 빠졌다는 사실을 경찰이 알아채는 과정도 모호하다. 필호에게 엮여 태식을 배신한 선배 형사 주봉(주진모)이 살인 계획을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주고받는다는 식의 허술함은 어떤가. 액션오락영화니까 설정의 디테일은 적당히 해도 된다고 생각한 건 아닐 텐데 말이다.

이런 탓에 고전적이지만 꽤 공을 들인 듯한 액션 장면, 소소한 웃음을 일으키는 조연군단(오달수·송새벽·이성민)등 장점이 묻히는 점은 꽤 아쉽다.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을 연상시키는 정치권 풍자를 시도함으로써 현실 정치와의 접점을 찍어보려는 의욕도 아깝게 묻히긴 마찬가지다. 권혁재 감독의 데뷔작. ‘주먹이 운다’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류승완 감독이 공동각본· 제작을 맡고 정두홍 무술감독이 액션연출을 담당한, 이른바 ‘류승완 사단’의 작품이다. 9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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