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시위 빌미 준 건교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지하철 4호선 정부과천청사역에서 청사까지는 걸어서 5~10분 거리다. 불편을 느끼는 공무원이나 민원인이 많다. 충남 연기.공주 지역에 세울 새 정부청사는 단지 내부로 지하철이나 버스가 지나가도록 설계한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그러나 지난 27일 공인중개사시험 탈락자들의 정부 과천청사 난입은 이렇게 하면 안전에 큰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을 일깨워 줬다. 이들은 청사 저지선을 가볍게 넘었다. 남북한 관계가 아주 불편했던 1970년 후반 보안을 중시해 지었다는 정부청사가 어처구니없이 뚫린 것이다. 청사가 문을 연 1982년부터 근무했다는 한 고위 공무원은 "처음 있는 일"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밤 늦게까지 계속된 시위 와중에 건물 유리창이 깨지고 주차돼 있던 승용차가 부서졌다.

탈락자들의 분노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정부가 원인을 제공했다. 건설교통부가 주관한 공인중개사시험이 너무 어려웠다. 지난해 11월 14일 치러진 15회 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전체 응시자 16만여명의 0.7%인 1258명에 불과했다. 예년 합격률은 15%선. 정부가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것이다.

건교부는 대책을 마련하라는 요구가 빗발치자 탈락자만을 대상으로 추가시험을 치르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런 미봉책은 탈락자들이 계속 떼를 쓰면 정부가 결국 손을 들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시험점수에 가산점을 부여해 합격자를 추가로 발표하라는 새 요구가 터져나왔다.

건교부는 27일에도 시위대를 해산하는 데 급급해 '추가 협의'에 응하겠다고 약속했다. 또다시 탈락자들에게 기대를 갖게 한 것이다. 건교부가 취재진에게는 추가 대책이 있을 수 없다고 밝히면서도 이처럼 모호한 약속을 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정부와 탈락자가 다시 얼굴을 맞대기로 했다니 정부가 먼저 확실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탈락자들도 과격한 행동을 삼가야 한다. 또 합격자가 적다고 가산점을 주어 응시자의 몇%를 꼭 합격시키는 게 온당한지 생각해 볼 때다.

허귀식 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