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74, 나락으로 떨어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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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4강전
[제6보 (64~77)]
黑 . 이세돌 9단 白.구리 7단

흑▲이 놓이며 대마는 훨훨 날아가버렸다. 우변도 흑이 67로 넘어가자 별무신통이다. 전력을 다해 흑의 허리를 관통한 구리(古力)7단은 문득 허망함에 몸을 떤다.

박영훈9단은 구리7단보다 온건한 기풍을 갖고 있다. 그런 박영훈이 66을 보며 너무 온건하다고 지목한다.

"지금은 위기 상황이거든요. 틈이 조금만 보이면 최대한 강수로 나가야만 합니다. "

박영훈이 66 대신 제시한 강수는 '참고도1' 백1이다. 흑도 잡으러 오겠지만 일련의 수순에 의해 9로 끊으면 누가 이길지 모르는 싸움이 된다. 5대 5라면 불리한 백에겐 대만족이다. 유리한 흑이 승부를 피하면 당연히 얻는 게 있다.

구리는 전보에서 큰 칼을 뽑아 깃털을 내리치더니 정작 칼을 뽑아야 할 대목은 무심히 지나치고 있다. 구리는 동요하고 있다.

흔들리는 자신을 질타하듯 구리는 68로 저돌했다. 파괴의 좋은 맥점이다. 그런데 직후 등장한 74가 그만 발을 헛디딘 수가 되어 구리는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구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이세돌9단이 둔 75, 77의 응수가 너무 좋았는지 모른다.

74는 '참고도2'처럼 두어 A, B를 맞보기로 하는 것이 부드러운 타개였다. 구리는 젖먹던 힘까지 쏟아낸다는 심정으로 좀 더 강하게 74로 젖혔는데 이것이 그만 이세돌의 새털처럼 가벼운 사이드 스텝에 걸려 들었다.

백은 물론 C로 두면 살아간다. 그런데도 고수들은 입을 모아 "백이 결정적 타격을 입은 것 같다"고 말한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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