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칼럼] 유정·몽정·활정…조루와 관계 있어

중앙일보

입력

이정택 한의사

자영업자 Y씨(37)는 사정하는 것이 그리 편치 않다. 학창시절 몽정을 너무 자주 하여 가족들 몰래 팬티를 빨아야 했던 곤혹스러운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며, 중요한 시험을 보며 너무 긴장한 나머지 교실 안에서 사정해버린 경험도 있다. 처음으로 성관계를 가지던 시기에는 심한 흥분 때문에 삽입하기도 전에 사정했던 일이 몇 번이나 있었다. Y씨에게는 사정이라는 것은 편안한 쾌감이라기보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던 지라 사실 지금까지 성관계를 하면서도 부담 없이 즐겨본 적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얼마 전부터는 발기 상태까지 안 좋아져서인지, 강직도가 떨어져 말랑거리는 상태에서 사정하는 일도 자꾸 벌어진다고 한다. 작년 말에 진단받은 만성전립선염과 관계가 있는 것 인지 자꾸 걱정이 되서 최근에는 성관계를 가지는 것 자체가 두렵다는 Y씨였다. 건강한 남성에게 사정, 즉 자신의 정액을 분출하는 것은 행위라는 면에서나 쾌감이라는 면에서나 도달할 수 있는 최고 정점에 해당한다. 자신이 남성임을 증명하는 가장 상징적인 생리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거꾸로 말해서 이 사정이라는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남성 입장에서는 자신의 남성성에 대한 큰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이때 발기부전이 동반되지 않는 한 대부분의 경우는 사정을 못 해서 벌어지는 상황보다는 사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이 문제시된다. 이와 같이 사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을 한의학적으로는 유정(遺精)이라 한다. 유정에는 몇 가지 세부적인 증상군이 포함된다. 몽정, 누정, 활정 등이 그것인데 비정상적인 사정활동으로 볼 수 있다. 이중에서 건강한 남성들도 반드시 한 번쯤은 경험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몽정(夢精) 혹은 몽설(夢泄)이다. 이는 성적으로 흥분되는 꿈을 꾸면서 수면 중에 사정하는 증상이다. 건강한 남성이 일정 기간의 금욕기간 끝에 몽정을 한다면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이므로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성관계나 자위행위를 통해 정기적으로 사정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2주일에 한 번 이상 몽정을 하는 것은 병적인 증상으로 유정의 일종으로 본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피로할 때 특히 자주 발생하거나, 혹은 꿈을 동반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면중 사정이 있었다면 더욱 그렇다고 본다. 수면 중에 사정하는 몽정과 달리 누정(漏精)과 활정(滑精)은 깨어있을 때, 비정상적인 사정을 하는 경우이다. 누정(漏精)은 성적인 자극에 너무 쉽게 반응하여 사정하게 되는 증상이다. 여성과 직접 성행위를 하지 않아도 성적인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시각적, 청각적 자극을 접하거나 성적인 의미가 담긴 말을 듣는 것만으로 발기와 사정이 이루어진다. 성관계를 가질 때에는 여성의 질 안으로 삽입하기 전에 애무 단계에서 심한 흥분으로 사정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는 자율신경이 실조되어 나타나는 중추성 조루 증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 교감신경이 과도하게 항진되고 부교감신경이 위축된 상태에서 외부 성 자극에 예민하게 반응하므로 발기가 유지되는 흥분기를 충분히 지속하지 못하고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사정 반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활정(滑精)은 발기가 완전치 않은 상황에서 마치 정액이 새어나가듯 사정하는 증상이다. 정신적으로는 크게 흥분하지 않아도 접촉 등의 물리적 자극이 조금만 있어도 사정이 이루어지곤 한다. 발기가 충분치 않기 때문에 사정 시 쾌감도 적고 분사력도 약하여 줄줄 새는 느낌이 드는 것이 보통이다. 심해지면 성적인 상황이 전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정하고, 만성적으로 소변에 정액이 섞이기도 한다. 이 수준까지 가면 한의학에서는 백음(白淫) 혹은 요정(尿精)으로 진단하며 오랜 치료 기간을 요한다. 활정은 전립선형 조루와 많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전립선염 혹은 그 후유증으로 조루가 나타나는 경우 발기 강직도와 분사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사정감 통제가 안 되어 약간의 접촉만으로 쉽게 사정하며 사정의 쾌감이 줄어드는 증상이 나타나는데, 활정의 증상과 매우 유사하다. 동의보감에서도 관련된 내용을 찾을 수 있는데, “성욕이 한번 동하면 정액이 따라 나오고 성욕이 없어서 정액이 오랫동안 몰려 있으면 음경 속이 가려우면서 아프고 늘 오줌이 마려운 것 같다(又曰慾心一動精隨念去凝滯久則莖中痒痛常如欲小便然)”라는 문구에서 만성전립선염이 성기능에까지 영향을 미쳐 사정에 변화를 주고, 음경의 이상감각을 야기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건강치 못한 사정은 본능적으로 남자를 침울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남자라면 누구나 한 두 번은 그런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유정 증상이 일시적으로 넘어가지 않고 계속 반복된다면 그것은 실제 질병을 반영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힘있고 시원한 사정, 때에 맞는 사정은 건강한 남성의 근본인 것이다. 한의사 이정택 이전 칼럼 보기 ▶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