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유주열] 쩡종(正宗)과 촨차이(川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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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宗”하면 무슨 생각이 떠 오를까? 지금은 잘 쓰이지 않지만 얼마전에만 해도 정종은 일본술 “사케”(日本酒)를 연상시켰다. 사케는 3세기경 백제인이 일본에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淸酒의 일종이다. 어릴 때 어른들의 심부름으로 청주 즉 정종을 가게에서 사온 기억이 있다. 당시 명절에 친지에게 보내는 선물로 케이스로 포장 된 정종이 많이 사용되었다. 그런데 이 정종이 중국어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후에 알게 되었다.
일본에서 “마사무네”라하여 사케의 대명사로 불리어지고 있는 正宗은 중국어로 “쩡종”(正宗)이다. 이 말을 중국어사전에 찾아보면 본래 불교용어로 “정통”이란 뜻으로 설명되어 있다. 중국에 가보면 식당의 간판에 이 말이 자주 들어간다. 이른바 “正宗 川菜”라고 하면 모방이나 짝통이 아닌 정통 사천식 요리라는 의미이다.
검도를 좋아하는 사람은 12세기 일본의 가마꾸라(鎌倉)막부시대에 막부소속의 천재刀工 마사무네(正宗)와 그가 만든 마사무네 일본도(正宗日本刀)를 기억할 것이다. 불교신자로 알려진 도공 마사무네도 자신이 만든 칼의 정통성을 위해 이름을 “쩡종”(正宗)의 뜻인 마사무네로 하였는지 모른다.
수백년 전의 일본에서 있었던 이야기라고 한다. 일본 중부지방 고베(神戶)의 로코(六甲)산 아래에 있던 어느 양조장에서 새로운 술을 빚었다. 오사카(大阪) 만을 마주보고 있는 로코산의 깨끗한 공기와 맑은 물은 예부터 이곳을 일본 제일의 “사케”생산지로 만들었다. 새로운 술을 빚은 양조장 주인은 좋은 이름을 얻기 위해 가까운 절을 찾았다. 당시로는 漢文를 알고 이름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은 사찰의 스님이었다.
스님을 만나러 갔지만 그 날 따라 손님이 많아 자신의 차례가 될 때까지 한 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무료한 가운데 문득 스님 앞에 놓인 책이 눈에 들어 왔다. 책의 표지에 복잡한 한자로 된 책의 이름이 적혀 있는 듯 했지만 다른 글자는 관심이 가지 않는데 표지 상단의 두 글자가 마음에 들었다. 자신이 보기에는 획수가 간단하고 대칭이 되어 보기에도 좋고 외워서 집에 가지고 가기도 편해 보였다.
그는 더 이상 스님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들이 기대에 부풀어 스님에게 좋은 이름을 받아 왔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의기양양하게 그렇다고 하면서 뜻은 모르지만 외워 온 글자를 그려 보였다. 그 글자가 바로 “正宗”이다. 그 후 정종은 이름 탓인지 또는 술맛 탓인지 일본 전국에 팔려 나가면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일본에서는 “사케”로 “正宗”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정종은 일본 술 “사케”의 대명사가 되었다. 정종이라는 이름은 그 양조법과 함께 우리나라에도 알려지게 된 것 같다.
그 날 스님 앞에 놓였던 책은 어떤 책이었을까. 당시 고베지역에 불교의 禪宗종단의 하나인 소토슈(曹洞宗)가 유행했으므로 스님 앞에 놓인 책의 표지는 “정종 조동종”이었을 것으로 추측해 본다. 이렇게 중국어의 일반 명사가 일본에 들어와서 “사케”의 브랜드로 또는 도공의 이름으로 뜻하지 않은 변신을 하여 정종이 본고장 중국보다 일본에 더 알려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유주열 전 베이징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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