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미국의 한계 보여준 이라크 전쟁 7년5개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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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시간으로 오늘 저녁 이라크 전쟁 종료를 공식 선언한다. TV로 생중계되는 그의 연설을 들으며 이라크 전쟁의 의미와 공과(功過)를 돌아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라크 전쟁은 과연 정당한 전쟁이었나. 내년 말까지 철수하는 5만 명의 비전투 병력을 제외하고, 전투병력이 오늘 철수를 완료함으로써 7년5개월에 걸친 전쟁은 막을 내린다. 그러나 미국의 승리를 말하기엔 후유증이 너무 크다. 이라크 전쟁은 ‘상처뿐인 승리’ ‘미완(未完)의 승리’로 역사에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2003년 3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공격 명령을 내리면서 대량살상무기(WMD) 색출과 알카에다 등 테러세력 척결, 이라크 민주화를 명분으로 내걸었다. 이라크에 파견된 미 병력 규모는 한때 17만 명까지 올라갔다. 4400여 명의 미군이 목숨을 잃었고, 이라크인 10만 명이 희생됐다. 미 정부는 1조 달러의 전비(戰費)를 쏟아부었다. 결과는 참담하다. WMD는 증거조작으로 판명됐고, 알카에다는 지금도 곳곳에서 자살폭탄을 터뜨리며 저항 의지를 멈추지 않고 있다. 총선이 끝난 지 6개월이 지나도록 정부 구성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 이라크 민주주의의 현주소다. 독재자 사담 후세인의 목숨과 맞바꾼 대가라면 너무 터무니없다.

치안불안과 정국혼란 수습의 과제를 이라크인들에게 넘긴 채 미국은 도망치듯 빠져나오고 있다. 또 다른 수렁인 아프가니스탄에 집중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겠지만 이라크인들은 미군이 빠진 힘의 공백을 불안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명분 약한 전쟁은 부메랑이 되어 미국에 돌아오고 있다. 미국은 유일 초강대국으로 호기롭게 전쟁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중국과 패권을 공유하는 ‘G2’의 지위에 만족해야 하는 처지다. 이라크에 쏟아부은 돈을 다른 데 썼더라면 지금의 경제위기는 없었을지 모른다.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은 힘의 한계를 드러냈다. 아무리 미국이라도 정당성과 국제사회의 지지가 결여된 무력 사용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음이 명백해졌다. 이라크 전쟁의 값비싼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