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충무로영화제의 이유 있는 몰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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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2일 개막하는 충무로영화제는 지난해 예산(60억원)의 4분의 1 수준으로 치러진다. 예산 문제로 경쟁 부문을 급히 없앴고, 상영작도 예년의 절반 수준으로 줄였다. 해외 게스트 초청과 부대행사도 대부분 없앴다. 김갑의 부조직위원장은 “영화제를 못 할 뻔한 위기까지 몰린 게 사실이다. 올해는 쉬자는 내부 의견도 있었다. 예산이 적다고 영화제가 안 열린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또 해외 영화인과의 신뢰 문제, 올해를 거를 경우 내년은 더 불투명해질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영화제가 계속돼야 한다고 밝혔다.

사정은 참 딱하지만 충무로영화제를 동정하는 영화인은 많지 않다. 그건 충무로영화제의 ‘업보’ 때문이다. 충무로영화제는 2007년 출범 당시부터 “뚜렷한 정체성 없이 물량으로 밀어붙인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영화제 측은 “서울에도 (부산영화제처럼) 성공한 영화제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논리를 내세웠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개성도, 성과도 별로 없었다. 영화제 틀을 짜는 프로그래머 등 스태프가 자주 바뀌는 점도 문제였다. 급기야 4월엔 중구 의회가 “중구가 지원 예산 중 10억원을 홍보비에 쓰는 등 방만한 운영을 했다”며 영화제 사무국을 고발하기까지 했다. 이러니 서울시에서도 선뜻 돈을 주기 힘들었을 터다.

영화제 관계자조차 ‘망가진 영화제’임을 인정하는 충무로영화제의 현실은 3년 간에 걸친 난맥상의 결과다. 이러고도 영화제의 존립을 계속 외칠 수 있을까. 충무로영화제는 제대로 된 청사진 없이 급조된 ‘관제행사’의 운명이 얼마나 볼썽사나운 것인가를 웅변하는 반면교사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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