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중심’베니스 건축전 지휘하는 첫 여성 디렉터 세지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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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세계 건축계의 가장 큰 행사인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이 29일 개막했다. 26~28일 건축가·기자 대상의 프리뷰에서는 “예년에 비해 훨씬 쉽고, 재미있고, 활기가 넘친다”는 호응이 쏟아졌다. 여성 최초로 건축전을 지휘한 일본 건축가 세지마 가즈요(54·사진)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올해 건축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데다 이번에 건축전의 꽃인 디렉터를 맡았기 때문. ‘건축의 중심은 사람’이라는 철학을 관철시키고, 젊은 건축가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다.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에 전시된 ‘미분생활 적분도시’(하태석 작품). 관람객들이 스마트폰으로 가족·교통수단·수입·여가생활 등에 대한 정보를 입력하면 자신에게 맞는 집의 모델이 완성된다. 이 집들이 주거단지를 이루고 도시를 이루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아이아크 제공]

◆건축과 사람의 소통=“건축에서 형태(form)는 주변환경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형태와 더불어 내게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람(people)이다. 사람들이야말로 창조의 과정에 중요한 요소다.”

세지마 가즈요는 26일 AFP통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시의 주제인 ‘건축 안에서 사람들이 만나다(People Meet in Architecture)’가 밋밋하게 들리지만,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설명이다.

세지마는 일본여대 출신으로 1995년부터 동료 건축가 류에 니시자와와 함께 설계스튜디오 ‘SANNA’를 운영해왔다. 도쿄 오모테산도의 크리스찬 디올 빌딩, 뉴욕의 뉴뮤지엄 설계로 유명하며, 2004년 열린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서 가나자와 현대미술관 설계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그는 공간이란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곳”이라고 믿어왔다. 공원이 여러 개인에게 사회에 대한 소속감을 함께 느끼게 해주듯이 공간은 다양한 체험의 기회를 준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번 건축전에는 젊은 건축가들의 참여도 두드러진다. 참여 작가들의 평균 나이가 40~45세. 또 전체 건축가들 중 절반 정도가 올해 처음으로 베니스를 찾았다. 세지마는 “건축전은 젊은 작가들의 아이디어 경연장”이라고 정의했다.

◆디지털과 건축의 만남=국가관 경쟁도 치열하다. 올해 국가관은 총 53개. 알바니아·바레인·이란·말레이시아·르완다·태국 등은 처음으로 참여했다.

한국관에서는 건축가 하태석 대표(아이아크)가 선보인 ‘미분생활 적분도시’가 인기다. 관객 참여형 작품이다. 관람객들이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으로 접속해 자기 스타일에 맞는 ‘맞춤형 집’을 만들 수 있다. 해당 공간은 다른 사람의 작품과 함께 스크린에 투사된다. 덕분에 관객들은 도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실감할 수 있다.

하 대표는 전화 인터뷰에서 “아파트 단지로 대표되는 획일된 주거 환경에서 우리는 도시가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의 참여와 활동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잊혀지곤 한다”며 “미세한 개인의 삶이 모여 도시를 만들어간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수많은 건축가와 기자들이 찾아와 한국건축의 높아진 위상을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첨단 디지털 기술 전시가 늘어난 것도 새로운 풍경이다. 특히 호주관에서는 10여 명의 건축가들이 2050년 시드니의 모습을 3D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화제가 됐다. 주최 측도 전시장 지도와 행사 내용을 담은 어플리케이션을 선보였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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