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민 “제 눈에 든 들보 보지 못하고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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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言)은 되돌아온다.’

20일 시작돼 26일 마무리된 인사청문회에서는 상당수 후보자가 이 같은 말의 의미를 뼈저리게 체험해야 했다. 과거 뱉은 말이 청문회장에 선 자신을 공격하는 비수가 됐기 때문이다.

가장 곤욕을 치른 이는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다. 기자 출신인 신 장관은 자신이 과거 썼던 칼럼 때문에 24일 의원들의 무차별 공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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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최문순 의원=후보자가 1993년 3월 23일 기사에서 ‘사회적 병폐를 치유하는 데 앞장서야 할 인사들이 부동산 투기 붐에 의해 부를 축적했다는 대목에서는 우리 사회의 지배엘리트들에 대한 도덕성이 의문시된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스스로 말해 놓고 자격이 있느냐.

▶신 후보자=….

▶최 의원=부동산 투기가 아니라고 할 수 있나.

▶신 후보자=살던 집 가격 올라가는 것까지 투기라고 하면 되겠나.

민주당 전혜숙 의원은 “(2002년) 장상 총리 후보자의 위장전입을 비판한 신문사 논설위원 시절에 자신은 네 번째 위장전입을 하고 있었다”고 추궁했다. 장상 총리 후보자 청문회가 진행되던 2002년 7월 칼럼에서 “개각 때마다 전력시비 등 구설수가 끊이지 않는 것을 보니 혹시 청와대마저도 뒷조사를 꺼려 마땅히 할 일을 안 하고 있는지 의심이 든다”고 쓴 과거 글을 꼬집은 것이다. 신 후보자는 “그런 기사를 썼던 사람으로 제 눈에 든 들보를 보지 못한 데 대해서…”라고 말끝을 흐렸다. 그는 이날 “남을 비판하기 위해선 제 자신이 좀 더 엄격한 자기 관리를 해야 함이 마땅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후보자도 과거 한 말이 논란이 됐다. 2006년 김병준 교육부총리 청문회에서 논문 중복 게재 등의 의혹에 대해 “학문 윤리라는 것이 지금 우리나라가 지식 강국으로 가기 위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가”라고 추궁한 게 문제였다. 이 후보자는 자신의 논문 중복 게재 의혹을 따지는 의원들에게 “실수로 주석을 못 단 것 같다”고 해명했으나 민주당 김유정·김상희 의원 등은 “김병준 후보자 청문회 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더니 자신에게는 관대하다”고 비판했다.

박재완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교수 시절이던 1998년 “각료라면 적어도 위장전입 등 위법사실은 없어야 국민에게 개혁을 주문할 자격이 있을 것”이라고 언론에 기고했다. 그러나 청문회 때 주민등록법 위반이 드러났다. 민주당 이미경 의원은 “칼럼에서 위법이 잘못됐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느냐”고 공격했고, 박 후보자는 “주민등록 정리를 늦게 한 것은 불찰”이라며 “자녀교육이나 탈세, 금융 소득공제 등의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했다.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도 야당 의원들에게 빌미를 제공했다. 진 후보자는 2009년 7월 백용호 국세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저도 97년에 다운계약을 한 것 같은데, 저는 이제 앞으로 저 자리에 앉으면 안 되는 상황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었다. 진 후보자는 본인의 청문회에서는 “대답하기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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