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선 독창성 인정, 일본선 푸대접…오랜 시간 축적된 독자들 신뢰가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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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61·사진 ⓒ2009 by ELENA SIEBERT)의 심층 인터뷰가 계간 ‘문학동네’ 가을호에 실렸다. 일본 신초샤에서 발행하는 계간 ‘생각하는 사람’에 실린 2박 3일간의 인터뷰를 번역한 것으로 무려 148쪽 분량이다. 신초샤 인터뷰를 요약 소개한다. 

그는 이 인터뷰에서 일본에서 되려 푸대접받은 경험을 털어놨다. “외국에서는, 무라카미가 아닌 다른 사람은 쓸 수 없는 세계가 여기 있다는 식으로 작품의 오리지널리티를 인정받는 일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일본에서는 호평이든 혹평이든 내가 쓰고 있는 소설이 오리지널이라고 말해준 적이, 내가 기억하는 한에서는 거의 없어요.”

지난해 이스라엘에서 주는 예루살렘 상을 받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일본 내에서 일었던 비난 여론도 언급했다. 하루키는 “나름 오랜 시간 생각해서 결단을 내렸는데, 그런 건 알아주지 않았다. 이른바 ‘진보적 미디어’의 상상력 부재, 경직된 모습에 특히 실망했다”고 말했다. 하루키는 수상 연설에서 “높고 단단한 벽과 그 벽에 부딪혀 깨지는 달걀이 있다면, 나는 언제나 달걀 편에 설 것이다”라며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을 비판했다. 그는 “예루살렘 상 수상연설은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하루키는 일본에서 푸대접받기도 했지만, 반골 기질 덕에 스스로 일본 문단을 외면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을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린 『상실의 시대(일본어 원제 노르웨이의 숲)』을 두고 “내 라인이 아닌 (리얼리즘 문체의) 소설이 많이 팔린 게 스트레스였다”고 털어놨다. “당시 일본의 이른바 ‘순문학’은 리얼리즘 문체, 심리묘사가 중심이었습니다. 극히 단순하게 말하면, 번거로운 것을 번거롭게 표현하는 거지요. 그런 책들은 읽어도 재미없고, 쓰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하루키가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작업”이라며 스스로 만족스러워한 최근작 『1Q84』은 일본에서만 발간 2주 만에 100만 부가 팔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관계입니다. 내가 시간을 들여서 정성스럽게, 꾀부리지 않고 일을 한다는 것을 지금까지 나의 책을 사서 읽은 사람들은 아마 알고 있을 테고 오랜 시간에 걸친 그런 신뢰의 축적이 힘이 되었습니다.”

『1Q84』 3권이 최근 국내에서도 번역돼 나왔다. 그는 “『1Q84』 1·2권과 3권은 전혀 다른 세계”라고 말했다. “속편이지만 작품으로서는 ‘다른 것’입니다. 스타워즈 시리즈로 말하자면 ‘제국의 역습’입니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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