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2위 PC업체 M&A승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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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잠잠했던 글로벌 인수합병(M&A) 시장에 회오리가 일기 시작했다.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잇따라 굵직한 M&A 경쟁에 뛰어들면서다. 금융위기와 경기침체에 움츠려 있던 기업들이 그간 쌓아둔 두둑한 실탄을 무기로 본격적으로 새로운 수익원 발굴에 나섰다는 방증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세계 최대 PC업체인 휼렛패커드(HP)와 2위 업체 델 간의 진검승부다. 두 업체는 최근 ‘스리파’(3PAR)라는 실리콘밸리의 저장장치 제조업체를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

23일(현지시간) HP는 16억 달러에 스리파를 인수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17일 델이 11억3000만 달러를 베팅한 데 대한 대응이다. 델도 이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자세다. 블룸버그통신은 24일 익명의 관계자를 인용, “델이 수일 내로 새로운 제안을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스리파는 저장장치 분야의 첨단기술과 소프트웨어를 보유하고 있다. 세계 PC 공룡들이 이 기업에 군침을 흘리는 것은 이른바 ‘클라우드 컴퓨팅’이란 신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또 글로벌 광산업체인 BHP빌리턴은 최근 세계 최대의 비료회사인 캐나다의 포타시를 상대로 400억 달러 규모의 적대적 인수에 착수했다. 비료 원료 분야로 사업 영역을 넓히기 위해서다. 여기에 중국의 국영화학회사인 시노캠이 “인수전을 예의주시 하고 있다”고 밝히고 나서면서 경쟁은 가열되고 있다.

유럽 최대 은행인 HSBC는 중국에 이어 아프리카로 눈을 돌리고 있다. HSBC는 23일 남아프리카공화국 4위 은행인 네드뱅크 지분 70%를 확보하기 위해 대주주와 배타적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19일 인텔은 보안업체 맥아피를 77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국석유공사(KNOC)도 최근 영국 석유탐사업체 다나페트롤리엄의 주식을 공개매수한다고 발표했다.

앞으로도 유수 기업들의 M&A 발표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본 최대 컴퓨터 서비스 업체인 후지쓰의 야마모토 마사미 사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글로벌 성장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인수 대상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또 3M은 올해 M&A에 20억 달러가량을 투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당초 발표 규모보다 2배로 늘어난 수준이다.

시장조사기관인 딜로직에 따르면 글로벌 M&A 규모는 7월 이후 증가하기 시작해 지난주에만 871억 달러를 기록했다. 8월 들어 현재까지의 규모는 1727억 달러로, 통계가 시작된 1995년 이후 최대 수준이다.

대형 M&A가 이어지는 것은 기업들이 쌓아둔 현금을 풀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금리는 낮고, 주식시장은 여전히 불안해 별달리 투자할 곳이 없는 데다, 인수 후보 기업들의 몸값이 적당히 떨어져 있다는 판단도 더해졌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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