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경의선 마지막 기관사 한준기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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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서울을 떠나 북쪽으로 달리던 경의선 철마(鐵馬)가 마지막 멈추는 곳 도라선 역. 2층짜리 역사(驛舍) 한 채만이 덩그러니 선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도라산리 민통선 안 허허벌판에 섣달 칼바람이 매섭다.

"여기서부터 끊겨 동강이 난 지 52년이 됐어."

29일 이곳을 찾은 한준기(韓俊基·76)씨. 평안북도 신의주까지 내달리던 옛 경의선의 마지막 기관사다.

올해도 기어이 연결되지 못한 철로의 끝자락에 서서 韓씨는 회한에 잠긴다.

"올해엔 정말로 기적소리 울리며 송악산(개성) 너머 들판을 달릴 줄 알았는데…."

남북한 당국 간 이런 저런 일들로 복원공사가 틀어지는 것을 보며 그는 올해 내내 속앓이를 했다.

생전에 경의선이 다시 뚫리리라곤 상상도 못했던 그는 2000년 6월 북받치도록 기쁜 소식에 잠을 못 이뤘다. 남북정상회담에서 경의선 연결을 합의한 것이다.

벅찬 감동은 그러나 2년 남짓한 세월 동안 아쉬움과 실망으로 변했다. 지난해 9월로 처음 예정됐던 공사 일정이 헝클어지더니 올해 남북이 약속한 '연말 개통'도 무산되고 말았다.

특히 최근 북한 핵(核)문제를 둘러싼 나라 안팎의 수상쩍은 분위기에 그는 불안하다.

"내년엔 북녘 땅에 들어가는 열차를 꼭 보실 겁니다. 그 첫 열차를 둘이서 같이 몰자고요."

韓씨를 태우고 도라선역까지 통일호를 몰고온 박종호(朴鍾浩·49) 기관사가 노선배를 위로한다.

경의선은 늘 韓씨를 50여년 전의 기억으로 몰고 간다.

1943년 일본 나가사키(長崎)에서 철도 기관사가 된 뒤 해방 후 귀국해 46년부터 경의선을 몬 그에겐 얼굴의 주름만큼이나 사연이 많다.

"서울에서 개성 위쪽 토성까지 달렸는데 별다른 교통수단이 없던 때라 늘 만원이었지. 개성의 깨끗한 시가지 모습은 아주 멋졌어."

그런 그와 경의선의 인연은 6·25 전쟁으로 끊겼다.

연합군이 압록강까지 밀어붙였던 50년 12월 韓씨는 황해도 함포까지 군수물자를 싣고 올라갔다. "그러나 중공군에 밀려 후퇴하면서 열차 지붕까지 빽빽이 올라탄 피란객들이 열차가 흔들릴 때마다 떨어져 다치거나 죽었어. 비참했지…."

그렇게 남쪽으로 내려오다 멈춰선 곳이 바로 비무장지대 안의 장단역.

미군의 정지 지시에 열차를 세웠고, 미군들은 韓씨 등을 모두 내리게 한 뒤 열차에 대고 수없이 기총 사격을 했다. 북한군이 사용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지금도 장단역 부근에 있는 녹슨 기차가 바로 그것이다. 총에 맞아 망가지는 열차를 그는 자기 몸이 부서지는 아픔으로 지켜보며 울었다고 한다. 꼭 52년 전 일이다.

그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화합'을 얘기한다.

"끊어진 철로를 잇듯 끊어진 남과 북, 서먹한 동과 서, 단절된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가 화합과 화해로 이어져야 해. 서로 이해하고 아껴주려고 노력해야지. 그래야 사회가 건강해지고 나라도 튼튼해지고 다시는 비참한 전쟁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서울을 향해 출발을 재촉하는 통일호의 기적소리가 울렸다.

레일 위를 걸어 열차로 돌아가면서 韓씨는 "다시 오마. 내년엔 꼭 너를 밟고 북녘땅에 가보자"고 힘차게 말했다. 그는 석달 전 기관사복 한벌을 맞춰 집에 고이 보관해 놓고 있다. 북으로 달릴 첫 열차의 기관실로 자기를 꼭 불러줄 거라고 믿고 있어서다.

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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