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20세기 달군 아시아의 '별'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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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20세기는 서구 문명과 서구적 사유가 전 지구적으로 영향력을 확산시키며 나머지 지역들을 지배했던 시기였다. 아시아도 그런 손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체제에 따라 모습을 달리했지만 자본주의 국가에서 나타난 '기술로서의 근대'나 사회주의 국가에서 나타난 '해방으로서의 근대' 모두 영토 확장에 혈안이 됐던 20세기 초 서구 열강의 두 얼굴에 다름 아니다.

21세기는 20세기와 달리 동양이 서구와 대등하게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는 진단들이 많다. 21세기의 벽두인 지난해 9·11 테러 사건이 발생,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진영과 이슬람 국가들 간에 난기류가 형성되기도 했지만, 아시아가 서양에 필적하는 세력의 한 축으로 성장하는 도도한 흐름은 거스를 수 없을 것 같다.

선(禪)을 중심으로 한 불교적 사유는 서양인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불어넣고 있고, 중국·일본 등이 중심이 된 경제적 실력은 세계인들을 놀라게한 지 오래다.

세밑에 출간된 『위대한 아시아』(황금가지)는 20세기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아시아의 주요인물 1백12명의 업적과 현황을 통해 아시아 각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역량을 결산하고 21세기에 있어서의 성장 가능성을 가늠해 보기 위한 것이다. 세계사 속으로의 도약을 앞둔 아시아의 일원으로서 정작 한국민들의 아시아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기 짝이 없다는 점이 책을 출간한 계기가 됐다. 때문에 『위대한…』은 '아시아의 지식인 지형도''아시아를 찾아서'쯤으로도 번역 가능할 것 같다.

신간 기획위원들인 윤상인 한양대 교수(일문학)·이동철 용인대 교수(중국 철학)·이희수 한양대 교수(이슬람문화)·임상범 성신여대 교수(중국 현대사) 등은 "아시아의 위인 1백12명을 시대·지역·분야별로 안배했다"고 밝히고 있다. 시대별로는 1945년에서 1960년대, 1960∼1980년대, 1980년대 이후로 구분했고 지역별로는 동북아시아·동남아시아·남아시아·서아시아 등으로, 분야별로는 정치·사상·문학·사회·경제·문화·학술 및 과학 등으로 나눴다. 80여명의 인물별 전문가가 동원돼 생애와 업적 등을 원고지 30장 씩에 녹였다.

정치 분야에서는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베트남의 호치민·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 등이 뽑혔고, 사상 및 학술 분야에서는 베트남의 틱낫한·이란의 호메이니·인도의 마하트마 간디 등이, 문학 분야에서는 인도의 살만 루슈디·일본의 오에 겐자부로와 무라카미 하루키·터키의 야사르 케말 등이 뽑혔다.

1백12명을 선정한 기준이 엄숙하지만은 않다. 영화배우인 홍콩의 브루스 리가 뽑혔는가 하면 일본의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등도 포함돼 있다.

'위대한'이라는 수식어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일본의 히로히토·캄보디아의 폴 포트·사우디아라비아의 오사마 빈 라덴 등도 빠뜨릴 수 없는 아시아의 인물이라는 평가와 함께 선정됐다.

신간의 최대 장점은 사람별로 6∼7쪽 씩 명료하게 정리된 분량을 통해 인물 요점 정리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양한 시기, 인물들의 행적을 차곡차곡 쌓다보면 격동의 아시아 20세기를 어림잡을 수도 있을 법하다.

짧은 분량은 단점이 되기도 한다. 첫머리에 소개된 일본의 비판적 지성 가라타니 고진의 경우 국내에도 그의 저작이 8권이나 소개됐을 만큼 방대한 사상세계를 7쪽으로 압축하다 보니 문맥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글 뒤에 소개된 가라타니의 저서 목록을 참조, 본격적인 가라타니 이해로 들어가는 단초로 삼아야 할 것 같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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