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극단행동 계속땐 核문제 우리손 벗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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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7일 밤 긴급 소집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에 모인 정세현(丁世鉉)통일부 장관을 비롯한 외교·안보 부처 수뇌부의 얼굴은 어두운 표정이었다.

정부가 그동안 북한의 핵 동결 해제 한계선으로 삼고 있던 영변 방사화학실험실(핵 재처리시설)의 재가동 발표가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건설 중이던 원자력 발전소의 건설 재개와 IAEA의 사찰단원 추방 방침까지 동시에 전해지면서 북한에 대해 엄중 경고하는 성명을 냈다.

다만 정부는 북한의 방사화학실험실 재가동 결정이 현재 밀봉돼 있는 사용후 핵연료봉을 재처리해 당장 플루토늄을 추출하겠다는 의도는 아니라고 본다. 북한이 방사화학실험실의 가동 이유를 "건설이 중단된 원자력 발전소들이 운영되는 때에 나오게 될 수많은 폐연료봉들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한 준비의 일환"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는 "이 발전소가 완공되려면 2년이 걸리는 만큼 방사화학실험실 재가동 결정은 대미 압박용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찰단원 추방 결정에 대해서도 IAEA의 북한 핵활동 감시 체제가 완전히 무너진 것보다는 북한이 제네바 합의상 의무조항을 어겼다는 데 주목하는 분위기다. IAEA가 이를 어떻게 해석할지를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날 NSC는 "북한이 한계선에 근접했지만 아직 넘지는 않았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방사화학실험실 재가동 표명에도 불구하고 아직 시간이 있는 만큼 IAEA의 판단 등을 지켜보며 미·일은 물론 관련국들과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게 정부 생각이다.

물론 정부는 잇따라 터져나오는 북한의 동결 해제 조치들이 정부의 '평화적 해결' 노력의 입지를 줄이지 않을까 고심하고 있다. 북한의 사찰단원 추방과 방사화학실험실 재가동 선언과 같은 자극적 행동이 미국과 IAEA를 비롯한 국제사회를 한층 강경 분위기로 몰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북한이 극단적으로 행동할 경우 핵 문제가 우리 손이 닿을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yj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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