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 이슬람계 통합 앞장서는 佛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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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프랑스에 거주하는 5백만명의 무슬림(이슬람 교도)들에게 지난주 뜻깊은 '사건'이 일어났다. 프랑스 전역에 흩어져 있는 각 이슬람 사원과 이슬람 분파의 책임자들이 단일 이슬람 통합기구로 프랑스 이슬람평의회를 창설키로 합의한 것이다.

이슬람교는 가톨릭에 이어 프랑스에서 둘째로 큰 종교지만 여러 분파로 사분오열돼 영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왔다.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고자 오래 전부터 조직을 통합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알제리·모로코·터키 등 출신지역 간 알력과 이데올로기 차이로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현재 프랑스의 3대 이슬람 단체 중 파리 사원은 알제리 이민을, 또 프랑스이슬람연맹(FNMF)은 모로코 이민을 각각 대변한다. 프랑스 이슬람기구연합(UOIF)은 보다 원리주의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

분열된 이슬람 조직들의 통합을 추진한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프랑스 정부였다.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은 지난 9일 스스로 합의문 초안을 작성, 이들 3개 단체장을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 서명하도록 설득하기도 했다. 그 역시 처음은 아니다. 1990년대 초 피에르 족스 장관에서 사회당 정권의 장 피에르 슈벤망, 다니엘 바이앙 내무장관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정부는 프랑스 내 이슬람권의 통합을 추진해 왔다.

종교를 초월한 국가통합이라는 그럴듯 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보다는 효율적인 통제가 진짜 목적이다. 대화 창구를 단일화하는 것이 프랑스의 이슬람교가 극단주의나 원리주의로 치달아 테러의 온상이 되는 것을 막는 데 훨씬 수월하다고 본 것이다.

유럽 각국 정부들도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자국 내 이슬람 교도들의 통합을 위해 노력해 왔지만 별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97년 이슬람평의회가 만들어졌지만 영국의 2백만 무슬림들을 대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터키계 무슬림이 많은 독일도 4개 단체가 서로 주도권을 다투고 있다.

프랑스 내 1천5백여개의 이슬람 사원 중 70% 이상이 이번에 통합에 합의한 3개 이슬람 단체 소속이다. 그만큼 통합의 기대가 높다. 하지만 통합에 참여하지 않는 소수 이슬람 단체들이 소외감 때문에 더욱 더 지하로 빠져들 가능성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cielble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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