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묘 도우미, 훈장 … 어르신 일자리 질 높아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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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남귀분(76) 할머니는 요즘 가방 디자인에 푹 빠져 있다. 남 할머니의 가방 사랑은 2월 성동구가 모집한 ‘리폼 디자이너’에 뽑히며 시작됐다. ‘할머니 디자이너’ 11명은 1주일에 세 번씩 성동구 복지관에서 폐현수막을 활용해 장바구니, 제설용 모래주머니, 패션가방 등을 만든다.

어르신들이 분묘 현황을 조사하는 ‘장묘 조사 도우미’, 어린이집과 경로당 등을 찾아 살균하는 ‘클린 세상’, 교통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꼬리물기 단속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관악구 성동구 제공]

이렇게 만든 작품을 대형 마트나 아파트 단지에서 무료로 나눠주며 환경보호 캠페인을 한다. 남 할머니는 “사회에 도움이 되는 데다 실력도 뽐낼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우면로 삼호가든 쇼핑센터 네거리. 교통유도 지시봉을 든 이용기(71) 할아버지가 경찰과 함께 ‘자동차 꼬리물기’를 단속하고 있다. 이 할아버지 같은 ‘서초 꼬리물기 단속반’이 뜬 이후 자동차의 통행속도가 시속 8.8㎞에서 10.2㎞로 빨라졌다. 서초구는 65세 이상의 ‘꼬리물기 단속원’ 50여 명을 임명했다. 이 할아버지는 “주중에 오후 3시부터 3시간 정도 일하는데, 보람을 느낀다”며 “교통환경이 바뀌는 모습을 보며 내가 하는 일이 꼭 필요한 것이라고 여기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의 구청이 제공하는 노인 일자리가 다양해지고 있다. 서초구가 올해 내놓은 노인 일자리의 수는 1050여 개로 지난해와 비슷하다. 하지만 환경개선이 대부분이었던 지난해와 달리 일자리 종류가 ‘꼬리물기 단속원’ ‘천연비누 제작·판매원’ ‘저소득층 말벗 나눔’ ‘노인모델’ ‘장묘 도우미’ 등으로 다양해졌다. 최재경 서초구 사회복지과 주무관은 “어르신들이 보람을 느끼고, 공동체에도 보탬이 되는 일거리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환경미화 등 단순·반복업무는 어르신들의 흥미도 끌지 못할뿐더러 사회적으로도 큰 소득이 없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성동구에서는 고학력 출신까지 아우를 수 있는 일자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배경숙 성동구 가정복지과 주무관은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과 ‘초등학교 방과후 교실’에서 어르신들이 지식과 경륜을 활용하신다”며 “할머니·할아버지의 정을 느끼지 못하던 아이들이 생활태도까지 바뀌어 학부모들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6월부터 ‘훈장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는 남궁욱(77) 할아버지는 “고등학교 수학 교사의 경험을 살릴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지역 FM 방송제작과 진행을 맡은 ‘시니어 온에어’(마포), 노인들에게 컴퓨터 사용법을 가르치는 ‘어르신 컴퓨터 강사’(구로), 어린이집과 경로당 등을 살균소독하는 ‘클린세상’(관악), ‘할머니 손맛 급식 도우미’(은평) 등 톡톡 튀는 노인 일자리가 눈에 띈다. 대부분 월 40시간 이내로 일하고, 월급은 20만~50만원을 받는다.

임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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