油價급등과 내복 입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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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제유가의 급등세가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미·이라크 간 전쟁 위기에 베네수엘라의 총파업이 장기화하면서 뉴욕 상품시장에서 중질유가 배럴당 31.97달러까지 올라 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금이 석유 소비가 한창인 겨울 성수기임을 감안해도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넘쳐났던 지난해 말에 비하면 50% 상승한 것이다.

걱정은 베네수엘라의 상황이 단시일 내에 해결될 것 같지 않고 파업이 멎더라도 석유 생산의 정상화에는 시간이 걸리리라는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내년 세계경기가 일본과 유럽의 침체에 미국도 크게 나아지지 못하리라는 전망 속엔 유가급등의 불안이 자리잡고 있다.

유가급등은 국내 물가는 물론 경상수지와 직결된다. 다행히 원화강세가 유가상승 충격을 어느 정도 완화시켜주고 있기는 하나 철저한 대비를 서둘러야 한다. 우선은 전쟁에 대비해 원유비축량을 확보해야 한다. 현재 국내 원유비축량은 1백4일분으로 국제에너지기구(IEA) 회원국의 평균비축량 1백14일분을 밑돌고 있다.

어느 틈에 실종해버린 우리 사회의 에너지 절약정신도 문제다. 지난해 우리의 석유 소비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운데 4위로 경제규모와 걸맞지 않게 선두권이다. 또 에너지시민연대의 조사 결과 관공서와 백화점 등 공공장소의 70%가 과잉난방에, 일부 패스트푸드점은 직원들의 반팔 유니폼 착용에 맞게 실내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97%를, 한 해에 원유만 1백80억달러어치를 수입하는 나라로선 생각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시민단체가 벌이고 있는 내복입기 운동도 호응이 낮은 편이다. 북한 동포에게 내복 보내기 운동을 벌이면서 정작 우리는 귀찮다거나 촌스럽다며 외면하고 있다. 온 국민이 내복을 입고 실내온도를 섭씨 2도만 낮춘다면 4천5백억원의 에너지 비용을 절감한다는 보고도 있다. 유가 급등에 국가적 대처도 중요하나 이에 앞서 내복입기라는 작은 실천에 동참하는 자세가 아쉬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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