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길 먼 한나라 '삐걱삐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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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6대 대통령선거 패배 후 한나라당에선 진로를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23일 여의도 당사에서 최고위원회의, 국회의원·지구당위원장 연석회의를 잇따라 열었으나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했다. 이 자리에서 서청원(徐淸源)대표와 주요 당직자들이 낸 사의는 반려됐다. 하지만 강재섭(姜在涉)·강창희(姜昌熙)의원은 최고위원직을 내던졌다.

회의장 주변은 전자개표기의 신뢰성을 문제삼으며 "수(手)개표를 하라"는 시위자들의 외침으로 하루종일 어수선했다.

아침 최고위원회의에서 徐대표는 "백지상태에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며 "당에 외부 인사와 당내 젊은 의원들을 포함하는 가칭 당쇄신특별기구를 둬서 모든 문제를 풀어가는 절차를 거치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강재섭 최고위원은 "후보가 정계은퇴를 한 마당에 최고위원과 현 시스템이 그대로 있는 것은 모순"이라며 당장 퇴진하자고 주장했다. 이에 김진재(金鎭載)최고위원은 "자리에 연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과도기를 꾸려나갈 팀을 꾸리고 물러나는 게 도리"라고 반박했다.

이후 비공개 회의에서도 논박이 오갔다고 한다. 모두 책임지고 당쇄신기구를 설치하자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물러나는 시점에 대해선 당장 하자는 쪽과 새로운 지도체제가 구성되는 시점에 하자는 쪽이 맞섰다고 한다.

전당대회 시기를 두고도 새 정부의 출범 전에 해야 한다는 의견과 당의 개혁방향을 잡는 것부터 하자는 쪽이 대립됐다. 쇄신기구의 참여인사·규모 등에 대해서도 논란 중이다.

이날 낮 국회의원·지구당위원장 연석회의에선 김홍신(金洪信)의원이 "패자인 우리는 민주당보다 몇 배 더 강도 높은 자기혁신과정이 있어야 한다"며 "이회창(李會昌)후보를 낡은 정치의 상징으로 만든 사람들은 평당원으로 백의종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별도로 당내 초·재선 젊은 의원 모임인 미래연대는 이날 오후 따로 모여 "전면·근본적인 쇄신을 위해 자기 희생이 필요하다"며 "자성의 상징적 조치로 지도부의 총사퇴가 이뤄져야 한다"고 결의했다.

원희룡(元喜龍) 공동 대표는 "즉각적으로 당 비상 대책기구를 구성해야 하고, 젊은 의원들이 여기에 참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6,27일엔 의원·위원장 연찬회를 열고 논의를 계속키로 했다.

이회창 전 후보는 당초 이날 연석회의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지나간 후보가 있는 게 당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막판에 참석을 취소했다.

고정애 기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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