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까진 강한 엔·위안화, 약한 달러·유로화 이어질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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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호 24면

환율에 대한 농담 한 토막. 아인슈타인이 죽어서 저승에 갔다. 저승 문에서 새로 오는 사람들에게 각자의 능력에 맞는 일을 맡기는 소임을 받았다. 첫 번째 사람은 아이큐가 200인 천재. 그에게는 물리학 연구를 맡겼다. 두 번째 평범해 보이는 사람에게는 수학을 공부하라고 했다. 아이큐가 두 자리인 세 번째 사람이 들어오자 아인슈타인은 한참 고민하다가 “에잇, 환율이나 전망하시오”라고 했다.

美·日·中·EU 중앙은행 총재 가상 대담 불붙은 통화전쟁, 환율 어디로 가나

환율 전망이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그러나 정부건, 기업이건, 심지어 개인이건, 환율 전망을 안 할 수 없다. 환율이 얼마인가에 따라 나라 살림살이가 달라지고, 기업이 얼마나 장사를 잘했느냐가 좌우되며, 유학 간 자식에게 보내는 송금액이 결정된다.
그럼 도대체 누가 환율에 대해 가장 잘 알고, 고민하며, 결정권을 행사할까. 가장 근접한 인물들이 바로 이 사람들, 중앙은행장이다.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시라카와 마사아키 일본은행 총재, 저우샤오촨 중국 인민은행장, 장 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이들의 가상 대담을 통해 춤추는 환율의 움직임을 어렴풋이나마 짚어봤다.

시라카와=먼저 입을 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즘 엔고(高) 때문에 죽겠습니다. 버냉키 의장님, 10일(이하 현지시간) 기억하시죠?

버냉키=당연히 기억하죠. 이날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FRB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열렸죠. 최근 몇 달간 경기가 둔화되고 있으며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경기회복 속도가 더 완만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연 0~0.25%인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상당 기간 이 수준을 유지하기로 시장에 메시지를 보냈죠.

시라카와=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시죠? 다들 안전자산이라고 엔화로 몰려들었습니다. 그 다음 날인 11일 런던 외환시장에서는 엔화 가치가 달러당 84엔 선까지 치솟았습니다. 1995년 7월 이후 최고치입니다. 오죽 급했으면 제가 나서 긴급 담화문을 발표했겠습니까.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쇼크 이후 처음으로요. 엔고가 일본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지켜보겠다고 발표했죠. ‘말발’이 먹혀서 다행히 급한 불은 껐지만 외환시장에서는 우리 일본은행의 개입이 없었다면 달러당 80엔대 초반까지 오를 것이라고 보더군요. 심지어는 80엔 선이 무너질 거라는 전망까지 나옵니다.

트리셰=그래서 이번주 중 간 나오토 일본 총리와 긴급 회동을 하기로 하신 거죠?

시라카와=엔화는 올 들어서 14% 올랐습니다. 주요 10개국 통화 중 최고입니다. 더 버티기 힘들 정도입니다. 미쓰비시도쿄UFJ은행이 분석한 걸 보니까, 달러당 85엔 수준을 1년간 이어가면 일본의 연간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0.4% 줄어든다고 하더군요. 16일 발표된 지난 1분기(4~6월) GDP 증가율이 0.4%(연율)입니다. 시장 예상치(2.3%)를 크게 밑돌았죠. 충격이었습니다. 더 이상 말로는 안 되네요. 행동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버냉키=일본 외환당국이 2004년 3월 이후 시장에 개입하지 않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합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인위적인 환율 조작은 반대합니다. 시장에 맡겨야죠. 일본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실 미국 경기가 안 좋으니까 엔화로 돈이 몰리는 건데, 미국 경기가 안 좋은 원인 중 하나는 중국에 있죠. 제가 지난달 상원 금융위원회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현재 중국 위안화는 시장 적정가보다 10~30%가량 싸게 거래되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 위안화가 싸니까 중국 수출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이 생기는 거죠. 사실상 중국 정부로부터 수출 보조금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저우=그렇게 말씀하시면 섭섭합니다. 이미 성의 표시를 했지 않습니까. 저는 제가 3월에 말한 걸 지켰습니다. 그때 중국이 위기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특수한 환율시스템을 가동하고 있지만 이것이 영원할 순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아시다시피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2008년 7월부터 달러당 6.82~6.83위안에 사실상 고정하는 달러 페그제를 써왔죠. 그래서 이걸 다시 관리변동환율제로 돌릴 거라는 암시를 드렸고, 실제로 6월 20일에 관리변동환율제로 복귀하지 않았습니까. 이전까지 달러당 6.83위안으로 묶여 있던 위안화 가치가 이달 초엔 6.76위안까지 올랐습니다.

버냉키=시장에서는 중국이 ‘무늬만’ 위안화 절상을 한 것 아닌가 의심합니다. 20일 위안화 가치는 달러당 6.78위안인데 이건 글로벌 경제가 요구하는 수준에 크게 못 미치죠. 미국의 6월 무역적자가 전달보다 19% 늘어난 499억 달러입니다. 20개월 사이 최고죠. 반대로 중국의 7월 수출은 어떻습니까.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8% 늘어난 1455억 달러입니다. 중국이 의도적으로 위안화 가치를 떨어뜨려 이런 무역 불균형 현상을 만든 것 아닙니까.

저우=그렇게만은 볼 수 없지만, 어쨌든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 여론이 그러니 저희도 6월에 위안화 가치를 올린 것이지요. 다만 2005년과 같은 큰 폭의 절상을 기대하시면 안 됩니다. 수출 경쟁력 하락과 핫머니 유입 등을 고려해 천천히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통화정책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 요인에 따라 결정됩니다. 중국 인구가 13억 명입니다. 국내 요소를 감안할 수밖에 없어요.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가 3.3%나 나왔는데 정부 목표치 3%를 웃돌죠. 21개월 만에 최고치입니다.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면 우리도 위안화를 절상해 수입 물가를 낮출 필요가 있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트리셰=예상보다 경기가 안 좋으니까 다들 수출을 늘리겠다고 자국 통화를 약세로 유지하려고 하는데, 이러다간 다같이 죽습니다. 힘을 모아야죠. 우리 유럽이 그렇습니다. 올봄에 PIIGS(포르투갈·이탈리아·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 국가들의 재정 건전성 문제가 화두에 올랐죠. ECB가 이들 나라의 국채 매입을 주도하고 금융시장 안정에 힘썼습니다. 그 결과 어떻습니까. 2분기는 물론이고 3분기 경제지표도 괜찮을 것으로 보입니다.

시라카와=트리셰 총재께서 그렇게 말할 입장은 아닌 것 같은데요. 독일을 보세요. 독일은 2분기 2.2%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통일 이후 최고치이죠. 예상치 1.3%를 크게 웃돕니다. 어떻게 이렇게 잘 나왔을까요. 수출 덕분입니다. 올 5월까지 수출액이 602억 유로에 달했던 게 경제 성장을 이끌었죠. 수출이 잘된 주된 이유가 바로 유로화 가치 하락 때문 아닙니까. 6월 초에는 유로당 1.2달러 선도 무너졌지요. 유로화가 약세니까 유럽 기업들의 경쟁력이 생긴 것 아닌가요.

트리셰=어쨌든 유럽은 경제위기 상황을 지혜롭게 풀어 왔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미국의 경기가 둔화되지 않을까 걱정이 큽니다. 지난 5일 금융통화정책회의에서도 금리를 올리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유럽이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이면 긴축 정책을 추진할 겁니다.

버냉키=그런 면에서는 죄송합니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됐다고는 하지만 역시 미국 경기가 중요하네요. 지난달 21일 상원 청문회에 나가 미국 경제전망이 불확실하다고 말했습니다. 실업률은 여전히 높고 주택시장도 취약하죠. FRB는 경기 부양을 위해 뭔가 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일단 그간 보유해온 주택담보대출(모기지) 증권 가운데 만기가 돌아온 자금을 국채를 사는 데 쓰기로 했습니다. 시중에 풀린 돈을 거둬들이지는 않겠다는 뜻입니다. 금리는 상당 기간 더 낮게 유지할 겁니다. 당분간은 달러 약세가 불가피하다는 얘기지요.

저우=버냉키 의장께서 달러 약세를 말씀하시니 우리 입장에서는 우려가 되네요. 자꾸 위안화를 절상하라는 압력을 넣을까 봐 말이죠. 협박하는 건 아닙니다. 그냥 아셨으면 해서요. 5월 현재 중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가 8677억 달러입니다. 미국 빼고는 제일 많아요.

버냉키=협박처럼 들리네요. 그럼 오바마 대통령 등 미 행정부가 중국을 정치적으로 압박하면 미 국채를 한 번에 내다 팔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의미입니까?
저우=그렇게까지야 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달러 가치가 떨어져 중국이 보유한 외화자산 가치도 줄어듭니다. 너무 몰아붙이지는 말아달라는 거죠. 우리는 이미 외화 보유자산의 다변화 차원에서 미 국채는 조금씩 팔고 일본과 유럽 국채 매입을 늘리고 있습니다.

시라카와=최근 엔고 현상을 심화시키는 데는 중국의 일본 국채 매입도 한몫하죠. 사실 중국이 외화자산 다변화를 한다고 하면서 일본 국채를 사들여 엔고를 만들고, 그래서 일본 기업들과 경쟁하는 중국 기업들을 우회적으로 도와주는 것 아닌지 의심이 됩니다.

저우=지나친 비약입니다. 외화자산의 다변화야 어느 국가나 다 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중국은 수출에 많이 의존하고 있습니다. 내수를 키운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역부족이죠. 인플레이션이 우려되기도 하지만 수출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위안화 절상은 천천히 이뤄질 겁니다. 연말 달러당 6.7위안 초반에서 유지되는 정도가 우리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시라카와=중국도 입장이 있겠지만, 우리도 우리 입장이 있습니다. 엔고 때문에 경제가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개입할 때가 됐습니다. 그런데 일본은행이 화수분도 아니고 언제까지 시장에 엔화를 풀어서 가치를 떨어뜨리겠습니까. 이건 임시방편이죠. 근본적으로 미국 경기가 회복되어야 엔화로 돈이 몰리지 않습니다. 미국 경기 전망에 대해선 논란이 분분하지만 그래도 더블딥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것 같으니, 연말까지는 달러당 86~87엔이 될 것 같네요.

트리셰=그렇죠. 아무리 외환당국이 개입해도 환율은 결국 경제 상황에 따라 좌우됩니다. 지난달 한 달 동안 달러화에 대해 유로화가 6.7% 오르는 등 강세를 보인 건 유럽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죠. 3분기 경제지표도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미국과 중국에서 이상 신호가 자꾸 나오면 유럽은 못 버팁니다. 현재로서는 연말까지 특별한 이슈는 없을 것 같네요. 달러당 1.3유로 선을 중심으로 박스권에서 움직이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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