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한·일서 유봉식 회장 관련 책 펴낸 최계환 아나운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원로 아나운서 최계환(76)씨가 일본 MK택시 유봉식 회장을 만난 것은 지난 1990년이다. 그는 교토(京都)에 있는 유 회장의 사무실을 찾고 충격을 받았다. 세계적인 택시회사의 사무실이 10평이 채 안되는 공간에 낡고 평범한 책상 하나와 소파, 사진 액자가 고작이었기 때문이다. 유 회장은 그 흔한 자가용 한 대 굴리지 않았고, 구내 식당에서 직원들과 함께 줄서서 배식받았다.

"유 회장은 열다섯의 나이로 일본에 건너간 뒤 60여년간 한국인으로 살면서 MK택시를 만들어냈던 것이죠. 속히 우리 국민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귀국하자마자 바로 KBS 당시 서기원 사장을 찾아가 얘기했어요."

이듬해 드라마 '교토25시'가 방송을 탔다. 이로 인해 MK택시와 유봉식회장은 드라마의 선풍적 인기와 함께 국내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두 사람 사이의 교유도 더욱 깊어졌다. 유 회장이 경영 특강을 위해 한국에 올 때나 최씨가 MK택시로 견학가는 한국 기업인들을 동행할 때 두사람은 항상 만났다. 그러다 2002년 유 회장이 재일동포들이 주로 이용하는 긴키(近畿)산업신용조합을 맡아 적자 기업을 흑자로 탈바꿈시키는 것을 보고 최씨는 다시 유 회장 얘기를 널리 알리기로 마음 먹었다.

최씨는 2003년 '고객감동'이란 말로 압축되는 그의 서비스 정신을 정리한 경영서 '봉사개혁에 코드를 맞춰라'를 출판했으며 이어 지난해말에는 이 책의 일본어판을 냈다. '사람이 움직인다'('人が動く'.서일본법규 출판사)가 바로 그 책이다.

"평소 안면이 있던 오카야마(岡山)상과대학의 이지리 아키오 학장에게 책을 줬더니 한국인의 눈으로 본 유 회장의 성공담이어서 흥미롭다며 번역해도 되겠느냐고 묻더군요. 전력투구를 다하겠다면서요. 완역된 걸 보니 일부 대목은 내 책보다 나았습니다."

책이 나온 후 한달여 만에 2만권이 팔렸다고 한다. 2800권만 나가도 본전이라고 했었다. 표현에 인색한 유 회장도 최씨의 손을 잡고 "재미있고 멋진 책"이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최씨는 "이러다 내가 일본에서 유명해지겠어요"라고 웃었다.

지금껏 방송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아나운서는 모두 7명이다. 이 가운데 최씨만 생전에 이름을 올렸다. 개성상고.건국대를 졸업한 그는 60,70년대에 당시 방송 3사(KBS.MBC.TBC) 모두에서 초대 아나운서 실장을 지낸 경력도 갖고 있다.'누구일까요''노래 실은 역마차''장수무대' 등 프로그램을 진행한 명사회자로 이름 높았다. 요즘도 SBS 스포츠TV 아나운서실장인 장남(최춘식)을 볼 때마다 "한참 멀었다"고 나무라는, 여전히 영락없는 아나운서다.

글=고정애 기자<ockham@joongang.co.kr>
사진=김성룡<xdrag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