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부활한 로마 제국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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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나라 목표에 맞게 국제 법제도를 만들고(세계무역기구), 자기 나라 목표에 맞지 않는 것(국제형사재판소, 교토환경협정 등)은 무엇이든 거부하는 나라." "로마 제국이 부활한 나라." 모두 미국을 가리키는 말로 냉전 체제 붕괴 이후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는 미국에 대한 경계가 담겨 있다.

미국은 한국의 대선에도 주요 변수로 작용했다. 의정부 여중생 압사 사건, 뒤이은 광화문 촛불 시위, 북핵 문제 등. '미국, 그 마지막 제국'이란 부제를 단 책 『아메리카』는 서두에 "미국이라는 나라가 우리 곁을 떠난 적이 없다. 미국은 우리에게 알파요 오메가"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기에 친미·반미를 넘어서 미국을 바라보는 국제 시각, 미국이라는 제국의 작동방식을 알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 의식으로 출발한 『아메리카』는 세계 각국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미국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 그들의 칼럼 70여편을 묶은 책이다. 노엄 촘스키(MIT대 교수)·이그나시오 라모네(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사장)·요셉 요페(독일 디자이트 논설위원) 등이 쓴 미국 관련 글과 이상현(세종연구소 국제관계 연구위원) 등 국내 필진의 글이 함께 실렸다. 그들의 공통점은 미국이 한 나라의 주권을 수호하는데 주력해왔던 국민국가의 모습에서 국제 질서를 관장하는 제국으로 변모한 과정을 진단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미국은 우파뿐 아니라 중도파들도 "미국이 과거 다른 제국보다 강대한 힘을 행사하고 있다"는데 동의한다. 신문에는 '제국'이란 단어가 거의 매일 등장하고, 새로운 제국주의 이데올로기가 미국민 전체에 싹트고 있다. 그런데 이런 미 제국을 떠받치는 네개의 기둥은 달러·인터넷·미사일·할리우드라고 한다. 유로화도 넘보지 못하는 세계적인 통화 달러, 컴퓨터·인터넷 등 신기술, 초현대식 군사력과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문화의 힘마저 갖추고 있는 것이다. 반세계화 운동의 선봉에 선 이그나시오 라모네는 이렇게 표현한다. "미국은 정보와 기술의 힘을 휘두르면서 상냥한 억압 또는 즐거운 독재체제를 구축한다. 미국은 우리의 뇌를 침공하기 위해 트로이의 목마를 파견하고 있다. 미국이 만든 대중매체 영웅들이 바로 트로이 목마"라고.

짧은 글들이 여러편 모였기에 책에서 한 학자의 깊이있는 분석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독일·영국·프랑스·중국 등지의 지식인 50여명의 칼럼 속에 농축된 미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은 날카롭다. 미국의 힘이 팽창하는 것을 경계하지만, 미국 또한 "어떻게 하면 제국의 시대를 더 연장할 수 있을까"란 문제에 봉착해 있다는 것이다.

도쿄대 대학원 법학정치학과 교수가 쓴 『민주주의 제국』은 『아메리카』에 실린 한꼭지로 오해될 정도로 같은 주제를 담고 있다. 그는 "누구를 보스로 인정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설정 자체가 잘못"이라며 "제국에 대신해 필요한 것은 국제협력의 틀이지 새로운 제국이 아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책은 국제기구의 공동화(空洞化), 공공영역의 해체를 우려하며, 미국이 국제협력을 계속 도외시하면 고립주의로 갈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제국으로 치닫고 있는 미국을 국제주의 안으로 되돌리기 위해 국제사회가 협력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발언을 담고 있는데, 현재로서는 유일한 대안이겠지만 '아메리카 수퍼 파워'의 엄청난 힘에 눌려 공허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홍수현 기자

shinn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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