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이 기소 판단 … 검찰시민위 첫 가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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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검찰이 기소 독점주의를 완화하기 위해 도입한 검찰시민위원회가 20일 포항지청에서 첫 회의를 열었다. 대검찰청은 지난 6월 검찰 개혁의 일환으로 중요 사건의 기소 여부를 시민들이 직접 결정하도록 하는 미국식 기소 대배심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포항지청은 지난달 지역의 법대 교수와 택시기사, 언론인, 시민단체 관계자 등 9명으로 시민위원회를 구성했고 건에 따라 이해관계자가 포함될 수 있다고 보고 예비위원도 4명 선정했다.

포항지청 시민위원회가 이날 심의한 사건은 검찰이 불기소 방침을 정한 뒤 시민위원들의 의견을 들어 최종 결론을 내리기로 한 두 건이었다.

첫 번째 사건은 퇴행성 관절염 환자에게 류머티즘 관절염 처방을 해 2000여만원을 벌어들인 의사 사건이었다. 검찰 조사 결과 의사가 고의로 류머티즘 처방을 남발한 점은 인정됐으나 이는 류머티즘 전문가라는 명성을 얻기 위한 것이었을 뿐 재산상 이득을 본 것은 아니었다. 이 때문에 사기죄로 기소하기 어렵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었다.

두 번째는 이혼을 요구하는 부인을 감금 폭행하고 강간한 사건이었다. 부인이 남편을 강간 등 혐의로 고소했으나 이후 부부가 다시 가정을 꾸리고 살기로 하여 고소를 취소했다. 친고죄인 강간은 고소 취소로 공소권이 없어졌으나 감금 폭행 부분은 기소가 가능했다. 그러나 부부가 화해하고 다시 잘 살기로 한 상황에서 남편을 감금·폭행으로 기소하면 징역형이 불가피해 당장 생계 유지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검찰은 시민위원회에 “처벌이 능사는 아니기 때문에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기소하지 않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시민위원들은 1시간30분여 동안 토론을 한 뒤 만장일치로 두 사건 모두 검찰의 판단에 동의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전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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