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장마 없었으면 조선도 없었다, 날씨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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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날씨가 바꾼 어메이징 세계사
반기성 지음
플래닛미디어, 370쪽
1만4800원

날씨는 인류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

대학에서 천문 기상학을 전공했고, 30년 동안 공군 기상예보관으로 근무한 지은이는 역사의 주인공은 시대의 영웅이 아니라 날씨라고 주장한다. 전쟁의 성패, 민족의 흥망성쇠를 좌우한 것은 홍수와 가뭄, 한파와 화산 폭발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인물 중심으로 기술된 역사에서 등한시됐던 날씨의 영향력을 부각시키고자 했다.

날씨를 주인공으로 올려놓고 보니, 익숙한 역사적 에피소드도 새롭게 다가온다. 예를 들어 고려 말 명나라를 치기 위해 북진하던 이성계가 회군을 결심한 것은 여름비 때문이었다. 당시 이성계가 고려 우왕에게 올린 상소 한 토막을 보자. “지금은 여름비가 심한 시기이므로 활과 화살이 풀리고 갑옷이 무거우며, 군사와 말들이 축 처져 있는데, 이를 이끌고 물이 불어난 많은 강을 건너 요동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싸워서 이길 수가 없으며 …” 우왕이 북진을 미루자는 상소를 받아들이지 않자 이성계는 회군을 결심한다. 여름비가 아니었다면 조선도 건국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날씨의 위력을 드러내는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이 참패로 끝난 것은 유례없는 혹한 때문이었다. 원자폭탄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지게 된 건 구름의 농간이었다. 다른 지역엔 자욱한 구름으로 폭격기가 접근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북한이 장마 시기인 6월 말 한국 전쟁을 벌인 것은 공군력이 강한 유엔군을 무력화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지은이는 책 중간 중간 “하늘을 읽어야 한다”는 표현을 즐겨 쓴다. 가까운 예로 그는 천안함 사태를 들었다. “당시 서해 지역의 조류와 바다 온도만 제대로 파악했더라도 인양 작업 중의 희생은 막을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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