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오른 노무현시대]당선자의 위상:24시간 '대통령급'그림자 경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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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대통령 당선자는 20일 오전 10시 중앙선관위에서 유지담(柳志潭)선관위원장으로부터 당선증을 넘겨받는다. 그 순간부터 당선자의 신분은 후보 때와는 천양지차로 변한다. 우선 대통령 경호실 직원들이 파견된다. 경호실법은 대통령 당선자와 가족을 대통령에 준해 경호하도록 돼 있다.

청와대 경호실은 지난달 말부터 이미 당선자 경호팀을 구성, 훈련해왔다. 최정예 경호요원 10여명은 24시간 당선자를 근접 경호한다. 방탄차량도 제공된다. 1997년 대선 직후 김대중(金大中·DJ)당선자는 청와대가 제공한 방탄차량을 거절하고 자신의 승용차를 한동안 계속 사용했다. 더 편하다는 이유였지만 그보다는 비밀 대화가 외부에 알려지는 걸 꺼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따라서 새 당선자가 청와대가 제공할 방탄차량을 타게 될지는 이번에도 미지수다.

경호실 관계자는 "당선자 경호를 위한 모든 준비는 끝났다"면서 "하지만 당선자측의 요구에 따라서는 경호의 내용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경호실이 따라붙는 순간부터 당선자를 만나기는 하늘의 별따기가 된다. 사실상 외부로부터 차단된다. 당에 있는 당선자 사무실에는 금속 탐지기가 설치되고 출입기자는 물론 핵심 측근들도 반드시 비표를 착용해야만 한다. 97년에는 이런 사실을 모르고 무작정 당선자를 만나러 왔던 측근인사들이 경호실 직원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자택 주변에는 경비인력이 배치되고, 부인과 자녀 등 가족들에 대해서도 청와대팀의 보호가 시작된다.

행정적인 정권 인수절차는 행정자치부에서 기초작업을 마친 상태다. 97년 김영삼(金泳三·YS)대통령이 '인수위 설치 시행령'을 대통령령으로 발동해 인수작업의 법적 근거를 만들었다. 하지만 시한이 6개월이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대통령령을 새롭게 발동하거나, 아니면 법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 DJ는 이번주 중 당선자와 만나고, 다음주 중 국무회의를 통해 인수위 시행령을 발동할 것으로 보인다.

97년에는 대선 직후부터 DJ가 사실상 권력을 인수하는 분위기였다. 6·25 이후 최대의 국난이라는 국제통화기금(IMF)체제로 들어갔던 시대적 상황 때문이었다. 언론에서도 "대통령 당선자가 빨리 국정을 장악하라"는 사설로 이를 기정사실화했다. 당시 임창렬 경제부총리는 대선 다음날부터 DJ에게 경제상황에 대한 보고를 시작했다. 여기에는 외환보유액 등 극비내용도 포함됐다. YS도 그걸 묵인했다.

이번에는 당선자와 현직 대통령이 어떤 관계를 맺을지 관심거리다. 당선자 측의 의욕이 지나쳐 월권행위로 이어질 수도 있고, 현직 대통령 측이 여기에 반발, 갈등이 빚어질 수도 있다.

미국의 경우 당선자는 현직 대통령과 당선 인사를 나눈 뒤에는 가급적 워싱턴에 나타나지 않은 채 조각작업과 향후 국정운영 방안 등 청사진 마련에 전념하는 게 관례다.

김종혁 기자

kimchy@joongang.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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