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스타벅스 하워드 슐츠 회장]"커피만 파는게 아니라 문화공간을 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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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12일 오전 9시 서울 역삼동의 '스타벅스' 매장. 낯선 외국인이 현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모닝커피를 마시던 고객 한 명이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선뜻 다가가 사인을 요청했다. 매장에 전시된 『스타벅스, 커피 한잔에 담긴 성공신화(Pour Your Heart Into It)』란 책의 표지 인물임을 알아챈 것이다. 그는 전세계 스타벅스 매장을 운영하는 스타벅스 코퍼레이션의 하워드 슐츠(49) 회장이었다. 곧 이어 다른 고객들도 슐츠 회장의 사인을 받겠다며 몰려드는 바람에 매장에는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11일 오후 한국에 도착하기 전 슐츠 회장은 스페인·네덜란드·스위스 등 유럽을 순회한 뒤 일본에서 이틀간 마라톤 회의를 열었다. 이어 한국에 도착한 지 24시간도 못돼 인천공항을 출발해 대만·홍콩 등 아시아 지역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이처럼 빡빡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슐츠 회장은 낯선 고객들의 사인 공세가 싫지 않은 듯 정성스레 써내려갔다.

-한국 방문 일정이 빠듯한데.

"한국에서 스타벅스 사업은 매우 순조롭다. 매장 수·매출·브랜드 인지도 등 모든 것에 만족하고 있다.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 것은 특별한 논의사항이 있어서가 아니라 신세계와 함께 설립한 스타벅스커피 코리아의 대표이사가 바뀌었기 때문에 인사차 들른 것이다."

-매장을 계속 늘려가고 있는데, 한국에서 적정한 매장 수는.

"지난달 말 현재 56개인데, 연말까지 60개로 늘어날 것이다. 에스프레소 커피 시장이 거의 없었던 한국에서 이 정도면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3백개 정도면 적당하리라 본다."

-나스닥 재팬에 상장하는 등 상승가도를 달리던 일본의 스타벅스커피 재팬이 최근 휘청거리고 있다.

"실제로 일본의 상황이 좋지 않다. 이틀간 수많은 사람과 오랜 시간 회의를 한 것도 그 때문이다. 언론·증시도 많이 불안해하고 있다. 일본에는 현재 4백여개의 점포가 있는데 많은 투자비용과 경쟁 격화에 따라 수익성이 예년보다 낮아졌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에서의 확장 정책을 고수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시장상황을 조사한 결과 상당수의 일본인이 스타벅스 브랜드에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일본 경제가 점진적으로 나아질 수 있다는 것도 확장정책을 고수하는 이유 중 하나다. 불황일 때 점포를 늘려 시장을 선점해 놓으면 경제가 좋아졌을 때 다른 경쟁사보다 빠르게 시장을 석권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자신하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나는 이미 1989년 시카고에서 처음 실패를 맛봤다. 시애틀·캐나다 밴쿠버 등 북미 서부 지역에서만 매장을 가지고 있었던 스타벅스는 89년 시카고를 시작으로 동부지역 공략에 나섰으나 여러 가지 요인으로 실패했다. 그러나 우리는 첫 매장의 실패를 교훈 삼아 1년 뒤 다시 도전했고 지금은 시카고의 거리 곳곳에 스타벅스가 들어서 있다. 일본 스타벅스도 시카고에서처럼 곧 일어설 것이다."

-스타벅스는 최근 10년간 순이익이 매년 7% 늘어났다. 앞으로도 이 같은 성공신화가 계속되리라 보는가.

"매일 4개씩 새로운 점포가 생기고 하루 고객만도 2천여만명에 이른다. 현재 30여개국에 6천여개의 스타벅스가 있지만 아직 우리가 진출하지 못한 나라도 많다. 그만큼 사업이 확장될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스타벅스는 현재 6천여개인 매장을 2005년까지 1만여개로 늘리고, 최종적으로 2만5천개가 될 때까지 성장을 계속할 것이다. 지금까지 스타벅스가 이룬 성공은 시작에 불과하다."

-스타벅스가 이렇게 성장하리라 예상했나.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90년대 초 누군가가 5년 만에 전국적인 인지도를 가진 브랜드를 만들어 낸 비결을 물어 온 적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매장 개점·종업원 교육에 너무 바빠 브랜드 전략을 세울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많은 소비자들이 스타벅스에 열광하고 있었다. 어떠한 광고전략도 펼치지 않았는데 매장이 오픈하면 소비자들은 커피를 사기 위해 줄을 선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성공 비결은 무엇이라고 보나.

"이탈리아 특유의 에스프레소 커피와 그것을 재료로 한 카페라테 등 다양한 커피를 최고급 원료로 만드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나아가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나서 낭만을 즐기고 문화를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스타벅스가 단순히 커피를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문화를 파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위기는 없었나.

"첨단기술에 투자를 하고 있을 때 커피전문점에 투자하라고 하니 누가 거들떠나 봤겠는가. 그러나 스타벅스의 무궁한 가능성을 본 사람들이 꽤 있었다. 싼 원두를 사서 비싼 값에 판다며 시카고에 본부를 둔 과테말라 노동조합이 흑색선전을 하기도 했다. 이 중으로 된 종이컵에 대해 환경론자들의 비난도 있었지만 재활용 등을 통해 슬기롭게 헤쳐갔다."

-종업원 복지수준이 높다고 하는데.

"스타벅스 성공에는 고객에 대한 종업원들의 높은 서비스 수준이 밑거름이 됐다. 그런데 복지가 형편없다고 하면 누가 서비스를 제대로 하겠는가. 우리는 88년부터 모든 파트타임 종업원들에게 종합적인 의료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또 91년 말부터는 빈 스톡(Bean Stock·원두주식)이란 이름으로 스톡옵션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아직 시행하지 않고 있지만 사업이 뿌리를 내리면 한국에서도 이같은 스톡옵션제가 시행될 것이다. "

김준현 기자 takeit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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