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외국어 선택 편중 대책 마련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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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요즘 고등학교 현장에서는 교사들을 중심으로 제2 외국어교육의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다. 교육부의 7차 교육과정에 따라 선택과목인 제2 외국어 영역의 7개 외국어에 대한 고교생들의 선택 결과, 특정 언어에 대한 편중 현상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독어·불어·일어·중국어·에스파냐어·러시아어·아랍어 등 제2 외국어가 7개나 되지만 이 가운데 우리와 지정학적으로 가까운 일본어에 대부분의 학생이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중학교에서 실시되는 재량 선택과목으로서의 제2 외국어 교육에서도 약 90%가 일어를 선택하고 있다고 한다.

이같은 제2 외국어 편중 현상의 이면에는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도사리고 있다. 원래 고등학교에서 실시하는 제2 외국어 교육의 목표는 세계의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배움으로써 학생들이 세계화 시대에 맞는 개방적인 사고를 기르자는 데 있다. 그러나 학생들의 대부분이 특정국가의 언어와 문화만을 학습하고 좀 더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접하지 못한다면 이는 제2 외국어 교육의 당초 목표에 어긋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이 온 데에는 교육부의 책임도 크다고 생각한다. 학생들과 관리자(학교장)들에게는 각 외국어의 특징과 중요성에 대한 홍보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7개 외국어 모두를 대상으로 공정한 선택기회를 제공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등한시 했다는 점에서 책임을 면키 어렵다는 얘기다.

게다가 특정 언어에 대한 편중 현상을 바로잡는 대책으로 제2 외국어 교사들을 교원대 등에서 일어 연수를 통해 전공을 바꾸도록 유인하고 있다거나 상담교사로 전환시키고 있다고 한다. 이런 대책으로는 사태 해결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해당 교사들이야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연수에 참가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어학연수를 통해 획득한 짧은 지식으로 학생들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일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전문화 시대에 비전문 교사들이 한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가르치는 것은 가뜩이나 무시 당하고 있는 공교육을 더욱 비참한 지경으로 몰아가게 될 것이다. 그 파장은 제2 외국어에 국한되지 않을 수도 있다.

7차 교육과정에 의해 교과목 선택에 많은 권한을 이양받은 학교장들도 제2 외국어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한다. 대학입시를 위해서는 국어·영어·수학이 중요하겠지만 21세기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언어와 문화가 더욱 중요할 수도 있다. 그리고 제2 외국어 선택의 편중 현상이 불러온 위기 상황에 학교장들이 방관자여서는 안된다는 점을 덧붙이고 싶다.

매년 학생들의 선택 결과에 따라 더 이상 교사들이 혼란을 겪어서는 곤란하다. 지금 많은 제2 외국어 교사들이 현장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을 덜어주지 못한다면 그들이 갖고 있는 교육에 대한 사명감도 공염불이 되고 말 것이다. 교육부와 학교장들은 제2 외국어 교육의 위기상황을 직시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각 언어 영역의 전문가들인 교사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고, 무엇이 '적성과 능력'을 살리는 7차 교육과정의 목표에 부합하는지를 심사숙고해야 한다. 제2 외국어 교육도 미래를 내다보는 장기적인 정책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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