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이 된 사람을 수사하라니 특검제 주장은 정치쇼에 불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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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이 된 사람을 수사하라는 특검제 주장은 정치적인 쇼에 불과하다.”

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 등이 제안한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특검’에 대해 검찰은 날 선 반응을 보였다. 특히 검찰 내부에서는 “특검제 도입 주장은 정치세력 간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것” “특검 수사를 통해 차명계좌가 나온다 한들 세상에 없는 사람을 기소할 수도 없다. 발상부터 틀렸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에 대해 특검을 제안했던 홍 최고위원은 19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이 문제는 역사적 진실의 문제인 만큼 정쟁 대상으로 삼지 말고 특검을 하자”고 주장했다. “특검을 통해 2~3일 내에 진실을 밝히고, 만약 조 후보자가 근거 없는 말로 전직 대통령을 명예훼손했다면 파면하는 게 맞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대검 고위 관계자는 “만약 수사를 다시 해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사망한 사람을 처벌할 수도 없을 텐데 그런 일을 왜 해야 하느냐”고 말했다. 다른 검찰 간부도 “특검이라는 건 기소를 전제로 실시하는 것”이라며 “아무리 정치적인 구호라지만 법 논리에도 맞지 않는 말을 꺼내 혼란만 일으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간부도 “검찰이 못 밝혀낸 게 아니라 당사자의 사망으로 종결된 사건인데, 이에 대해 특검을 하자는 것은 정치적인 구호에 불과하다”고 했다.

검찰의 이 같은 입장은 ‘차명계좌 특검’이 이뤄질 경우 검찰 조직 전체가 다시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지난해 5월 노 전 대통령이 숨지면서 검찰 수사를 비난하는 여론이 거세졌고, 이 때문에 대검 중수부가 1년 이상 ‘개점 휴업’ 상태였기 때문이다. 올 하반기부터 기업 비리 등을 수사하면서 검찰의 입지를 넓히려던 구상이 차명계좌 특검으로 인해 좌초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검찰이 이번 사건에 대한 정치적인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특검제 논의 단계부터 이레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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