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CEO 시대는 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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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어느 시대, 어느 사회든 영웅은 존재한다. 암울했던 일제시대 종로에는 협객 김두한이 있었고, IMF시기에는 박찬호와 박세리가 대중의 영웅으로 떠올라 우리의 좌절감을 잊게 해주었다.

세계는 지난 40여년 간 고속 성장을 이뤄 낸 한국경제를 부러워하고 있지만 한국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본받고자 하는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세계에 내놓을 만한 CEO를 키워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럴 만한 토양도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인이라면 색안경부터 끼고 바라보는 풍토가 사라지지 않는 한 잭 웰치나 빌 게이츠 같은 스타CEO는 탄생될 수 없다.

시장경제체제에 있어서 발전의 원동력은 다름아닌 '경쟁'이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열심히 노력하고 또 노력한 만큼의 충분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CEO가 기업경영전략과 목표에 대해 주주나 주주를 대표하는 이사회와 계약을 하고 이를 달성했을 때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매출·이익·시장점유율 등 경영 전반에 대한 목표를 설정해놓고 이를 달성했을 때는 충분한 보상을, 달성하지 못했을 때는 다시 한번 기회를 주든지 퇴출시키면 된다.

CEO의 역량과 자질에 따라 기업은 살기도 하도 죽기도 한다. IMF위기를 거치면서 우리는 두 부류의 대조적인 기업군을 목도했다. 유능한 전문경영인에게 권한을 위임해 그들의 능력을 1백% 발휘케 함으로써 위기를 무사히 넘겨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기업이 있다. 그런가 하면 오너회장이 마지막 순간까지 "감 놔라 배 놔라"식으로 경영을 뒤흔들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기업도 있다.

IMF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해 낸 우리도 이제 스타 CEO 몇 사람쯤은 가질 때가 됐다. 스타플레이어가 없는 운동경기가 흥미를 끌지 못하듯이 스타 CEO가 없는 기업은 동기부여를 통한 경쟁력 강화를 이룰 수 없다. 스포츠나 연예계에서만 스타가 나오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기업의 흥망을 좌우하는 CEO가 우리시대의 영웅으로 떠받들어질 때 비로소 기업가치도 올라가고 이를 바라보는 샐러리맨들도 미래의 장밋빛 꿈을 키워나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CEO의 평균연봉이 대졸사원 초임의 6.1배에 달해 일부에선 이를 과도하다고 보는 듯한데 이는 옳지 못한 시각이다. 소득세 누진율 등을 감안한 실수령액은 4.5배에 불과한 실정을 제대로 봐야 한다. 연봉 2천만원을 받는 신입직원이 30년 간 분골쇄신 일해서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연봉 1억2천만원짜리 책임만 잔뜩 떠안는 자리라면 과연 동기부여가 제대로 될 수 있을 것인가?

미국 기업의 경우, 신입사원과 스타급 CEO 간의 연봉 차이가 4백43배 정도나 된다고 한다. 전문경영인에 대한 동기부여가 기업성장에 영향을 미친다는 실증적인 사례는 국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모 전자회사의 경우, 35억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 임원이 5명이나 된다는 사실은 왜 그 회사가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이 되었는지를 방증해주고 있다. 반면 정부관리기업 중 한 기업은 그 규모가 해당 업종에서 전세계 10위권임에도 불구하고 CEO의 연봉이 1억2천만원대에 불과하다. 이래 가지고서는 성취동기에 불을 붙이기가 어려울 것이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대학 졸업자들이 표상으로 삼을 만한 CEO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목표가 없는 사람에게는 미래가 존재하지 않고, 동기부여 없이는 성취 또한 있을 수 없다. 이 땅에서도 대중의 사랑과 선망의 대상이 되는 스타CEO들이 태어날 수 있도록 목표 달성에 대한 합당한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박찬호·박세리뿐만 아니라 김정태·유상부·윤종용 회장 같은 유능한 CEO들도 영웅대접을 받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다. 또한, 우리 기업들이 세계 일류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우리 경제의 밝은 앞날도 기약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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