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파람 공주']값싼 코미디에 체포된 어설픈 南男北女 사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10면

영화는 아이디어로만 완성되는 게 아니다. 아이디어가 뼈대라면 이를 튼튼하게 받쳐주는 근육과 살, 즉 에피소드의 개연성이 살아나야 영화의 재미가 확보된다. 팬터지든, 액션이든, SF든 장르에 관계없이 드라마는 영화의 기초 중 기초다. 이른바 '얘기'가 그럴 듯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휘파람 공주'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철없는 딸 지은(김현수)이 남한의 3류 밴드 리더 준호(지성)와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한다는 아이디어가 새롭다.

이른바 남남북녀의 만남을 다룬다. 게다가 남북한의 정보국 요원이 힘을 합쳐 미국 CIA의 음모에 맞서고, 순수한 두 청춘의 사랑을 통해 남북의 화해를 도모한다는 취지가 주목됐다.

그런데 영화는 바로 그 지점에서 정지한다. 말하려는 메시지는 선명하나 이를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장치를 갖추지 못한 것이다. 중간 중간 실소가 터진다.

남북 대치란 현실을 영화 속에서나마 무너뜨리려는 의도는 분명하나 이를 설득력있게 제시하는 세기(細技)는 뒤따르지 못한다.

남북 정상회담을 한달여 앞두고 서울에 공연하러 온 평양예술단 소속의 지은이 경호원을 따돌리고 '야반도주'하는 첫 장면부터 어설프다. 마지막 장면, 지은과 준호가 사랑을 확인하는 록 페스티벌 공연장을 급습하는 CIA 요원과 이들을 제압하는 남북 정보요원간의 총격전도 느슨하다.

영화는 등장 인물의 행동 동기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슬렁슬렁 액션만 늘어놓는 탓에 '값싼' 코미디에서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화장품·시계·자동차 등 CF계에서 인정받았던 이정황 감독은 영화와 광고의 차이점부터 다시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25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박정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