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 잡힌 이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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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자민련 김종필(金鍾泌·JP)총재가 13일 이인제(李仁濟·얼굴)총재권한대행의 발목을 잡았다. 李대행은 전날 의원총회가 정한 "당론은 중립이지만, 당원은 개인자격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할 수 있다"는 입장을 명분으로, 이날 오후부터 충청권에서 이회창 후보 지지유세를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JP가 당론의 최종 확정기관인 오전 당무회의에서 '엄정 중립'을 강력히 천명해 의총의 결론을 흔들었다. JP 옆에 앉았던 李대행의 얼굴은 굳어졌다. JP는 "이번 선거에서 엄정 중립을 견지하겠다는 우리의 의지를 李대행과 분명히 합의했으며, 특히 당 5역이나 핵심 당직자들이 공식적인 지지표명이나 유세를 해선 안된다"고 밝혔다.

李대행은 이에 대해 "한나라당을 지지한다고 한 적이 없으며 특정 후보를 위해 유세다니는 일도 없을 것"이라며 "다만 우리당이 급진세력의 대두를 경계하는 것은 정체성을 분명히 하자는 뜻"이라고 했다. 李대행은 대전에 내려갔으나 '이회창 후보 지지'라는 말은 입에 못 올리고, "급진세력 등장을 저지해야 한다"는 식으로 소극적인 '노무현 후보 반대'입장만 표명했다.

JP의 李후보에 대한 거부감이 갈수록 커지는 것과 관련, 자민련 관계자는 "JP가 최근 민주당 고위 당직자를 비롯한 여권 사람들과 접촉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盧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크다. 이념·정체성 문제로 盧후보를 지지하지 못한다면 중립이라도 유지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는 것이다. 또 盧·鄭 연대가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과 '초당적 국정운영'을 약속한 만큼 집권 때 JP의 자민련과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은근한 제안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신홍 기자

jbj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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