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核 파문 철도·도로 등 남북 교류사업 좌초 위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북한 미사일 운반선 나포 하루 만인 12일 핵동결 해제 선언이 평양으로부터 터져나오자 정부는 남북관계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며 사태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당장 남북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남북 간에 합의된 교류·협력 사업의 추진에 탄력이 붙어야 할 상황에 오히려 돌출악재가 잇따르고 있다"고 당혹스러워했다.

특히 경의선(京義線)과 동해선 철도·도로의 연결과 개성공단 착공 일정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나온다. 실무접촉 차원의 남북 당국 간 대화도 줄지어 예정돼 있다.

일단 11일부터 서울에서 시작된 남북경제협력제도 실무협의회가 12일 오후에도 전체회의를 순조롭게 진행하는 등 당장 불똥이 튀지는 않고 있다.

북한은 최근 들어 핵문제와 관련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중유지원 중단 결정 등 대북 압박책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에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임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과거 북·미 간 중대 현안이 대두하면 남북대화의 문을 걸어잠그던 것과는 태도를 확 바꾼 것이다.

하지만 북·미 간의 극한대결 양상이 지속될 경우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에 미국과 대북 공조체제를 갖춰야 하는 정부는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 정부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사태 진전에 따라서는 북핵 파국으로 이어져 1993∼94년 핵위기 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가뜩이나 최근의 반미(反美)분위기와 대선 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아든 상태에서 정부가 선뜻 대북조치를 취해나가기가 쉽지 않다는 고충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러다가는 남북 간에 합의된 교류·협력 사업이나 당국 간 합의이행을 다음 정부로까지 이어가려는 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북한의 잇따른 맞대응이 대북정책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확산시킬 가능성도 제기된다.

고위 당국자는 "북핵문제 해결에 남북 당국 간 대화채널을 활용하는 것도 일정한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10월 초 켈리 특사의 방북 이후 불거진 '북 핵개발 시인'상황에는 북측의 진의 파악과 평화적 해결 메시지를 북한에 보낼 수 있었지만, 판깨기에 직면한 가파른 대결 국면에서는 정부가 북·미 간의 중재역을 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이번 사태로 핵문제에도 불구하고 남북 간의 교류·협력사업은 연계없이 추진한다던 정부의 방침도 시련을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식량이나 경협·대북 투자에도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커졌다.

이런 정황 때문에 정부가 북한 핵·미사일 문제에 대증(對症)요법으로 때우기보다는 짜임새 있는 대응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북한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남북관계뿐 아니라 한반도 정세에도 엄청난 파장을 몰고올 수 있는 만큼 대북정보 사전 공조 등을 통해 면밀한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영종 기자

yjle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