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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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령 또는 사망에 대해 연금 급여를 줌으로써 국민의 생활안정과 복지증진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정부는 이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고,연금 급여에 쓰기 위한 책임준비금으로 국민연금기금을 설치, 운영하고 있다.

연금기금을 운영하는 국민연금관리공단은 양질의 연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일반 연금 가입자의 만족도를 높이고, 연금 운용의 위험을 예방해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지난 5월 현재 국민연금의 조성금액은 총 98조원,지출금액은 16조원이다. 이에 따른 운용금액은 82조원이며, 2020년에는 4백조원 규모가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기금은 공공부문에 31조원, 복지부문에 6천억원, 금융부문에 51조원을 운용하고 있으며, 금융부문 투자액 중 주식부문은 2조8천억원에 이른다.

최근 공무원연금과 사학연금 등의 기금 운용에서의 문제점 등이 제기돼 연금가입자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국민연금기금이 기금 운용의 합리화 방안으로 국민연금기금의 주주권행사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면서 이에 대한 찬반 양론이 나타나고 있다.

나는 국민연금기금이 주주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그 이유는 이렇다.

국민연금기금은 연금 가입자인 국민에 대해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선관의무)'를 지고 있으며,이를 위해 일정한 위험이 허용되는 한도 안에서 연금기금의 수익률을 최대로 증대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의결권 등 주주권 행사는 기업가치 및 연금자산 가치의 제고에 기여하는 방안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의결권 등 주주권 행사가 기업가치를 높여줄 것인가 하는 점인데 이에 대한 논리는 간단하다. 즉 상당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거대한 연금이 적극적으로 주주권한을 행사해 해당 기업들의 기업지배구조를 올바르게 구축시켜 놓으면 기업지배구조 위험이 줄게 되고,이로 인해 기업가치는 증대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주주권 행사→기업지배구조 개선→기업가치 상승의 논리적 연결고리가 있다는 얘기다.

주주권 행사가 사기업을 위축시킨다는 논리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이 기업가치의 증대로 이어지지 않고,사기업의 경영권을 침해한다는 것인데, 이는 기업가치 극대화가 목적 함수인 주주의 입장에 정면 배치되는 주장이다. 주주는 기업가치를 해치는 결정에는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이란 점을 무시한 주장인 것이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와 관련해 선진 외국에서는 이러한 사례가 없다는 게 전경련의 주장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공적연금에 대해 주법(State law)과 판례법에 의해 주주권 행사를 의무화하고 있다. 영국에서도 주주 권한 행사를 의무화하고자 입법안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 주주권 행사와 관련해 가장 우려되는 반대 의견 중 하나는 정부 또는 정치권에 의한 기업지배와 이로 인해 사기업을 공기업으로 만드는 것 아니냐는 점이다. 그러나 이 부분은 다음과 같은 견제장치들을 마련함으로써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국민연금기금 자체의 지배구조를 개선해 현재 21명인 국민연금기금 운용위원회 위원들 중 정부측 인사 6인을 3인으로 줄이고, 국민연금 관계자는 투자대상 기업의 임원에서 배제한다.

둘째, 국민연금법에 연금기금의 주주권 행사를 의무화하되 주주권 행사는 국민연금 수혜자의 이익을 위해서만 행사하도록 명시한다.

셋째, 의결권을 포함한 주주권 행사의 지침이 되는 기업지배구조 기본 원칙을 광범위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마련하고,이를 공개함으로써 원칙에 입각한 주주권 행사가 되도록 한다

넷째, 객관적인 외부기관의 자문 등을 받음으로써 주주권 행사와 관련한 외부 압력을 차단하도록 한다.

다섯째, 주주 권한 행사 결과를 투명하게 연금 가입자와 수혜자들에게 공시해 의결권 행사의 남용을 막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국민연금기금 운용위원회 직속으로 준법감시인을 두고 이로 하여금 주주권 행사가 관련 법규 및 주주 권한 행사 지침에 부합되는지 항상 감시하도록 해 주주권한 행사의 남용을 막도록 한다.

위와 같은 견제장치를 마련해 국민연금이 실질적으로 보건복지부의 영향력 하에 있기 때문에 주주권행사를 통해 정부가 기업 경영에 간섭하게 된다는 우려를 불식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연금기금의 주주 권한 행사는 새로운 형태의 관치가 아니라 연금가입자 또는 수혜자들의 이익을 위한 최소한의 의무다. 오히려 주주 권한 행사를 하지 않으므로써 연금가입자 또는 수혜자들의 손해를 가져온다면 이는 국민연금기금 운용자의 태만과 실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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