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남 골잡이" 日서도 열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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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미즈(淸水)역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잠깐 졸았나 싶었는데 눈앞에 거대한 후지산이 확 들어왔다. 밀가루 같은 흰눈이 산 중턱 능선까지 내려와 있었다.

시미즈 S-펄스 훈련장이 있는 미호(三保)로 가는 도중 'S-펄스의 길'이 나왔다. 축구단 깃발이 펄럭이는 이 도로를 지나는 동안 버스에서 "축구를 좋아하는 시미즈 시민 여러분, 우리 S-펄스를 열심히 응원합시다"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시미즈 사람들의 축구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은 대단하다.

버스 종점에 내려 10분쯤 걸어들어가니 S-펄스 구단 사무실과 붙어 있는 훈련장이 나왔다. 12월 5일이라는 날짜가 무색하게 5월처럼 느껴지는 훈풍이 불고, 감귤나무에는 열매들이 화려한 주황색을 뽐내고 있었다. 감귤색 유니폼의 선수들이 연습경기를 하고 있는 그라운드에 치렁치렁한 파마 머리의 안정환(26)이 보였다. 브라질에서 귀화한 일본 국가대표 산토스와 투톱이었다.

스탠드에는 50여명의 열성 팬들이 훈련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여기서도 안정환은 단연 인기였다. 열성 팬이라는 도모코(20)양은 "안선수가 왜 좋으냐"고 묻자 서툰 한국말로 "잘 생겼다""멋있다"고 말했다.

연습 경기가 끝나고 마무리 러닝을 했다. 안정환이 뛰는 모습은 멀리서도 알아볼 정도로 독특하다. 건들건들하면서도 리듬이 있다. 안선수의 강점은 바로 이 리듬과 부드러움에 있다. 대포알 슈팅과 화려한 드리블링은 타고난 유연성이 바탕이 된 것이다.

훈련이 끝난 뒤 안정환은 기자와 만나 "2002년은 개인적으로 영광과 좌절이 교차했던 해였다. 어려움도 많았지만 축구를 통해 국민에게 희망과 기쁨을 줄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말했다. 생각보다 성적(10경기 3골·2도움)이 만족스럽지 않았던 데 대해서는 "월드컵 이후 이적이 늦춰지면서 파주 트레이닝센터에서 개인훈련을 했지만 체력훈련이 부족했다. 어느 정도 경기에 적응하려하니 시즌이 끝났다"며 아쉬워했다.

안정환은 자신의 대표팀 등번호인 19번이 새겨진 축구화에 직접 사인을 한 뒤 "(경기 중 쓰러져 무의식 상태에 있는)임수혁 선수 돕기 자선 경매에 올려달라"고 기자에게 부탁했다.

산토스는 안정환에 대해 "말은 통하지 않지만 느낌만으로도 호흡을 맞출 수 있다. 그만큼 센스가 뛰어나고, 패스·슈팅 등 모든 면에 능하다"고 칭찬했다.

S-펄스 구단은 안정환을 '주력상품'으로 내세우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구단 소식지 11월호에 안정환을 표지 모델로 내세웠고, 12월호에는 5쪽짜리 특집 인터뷰를 실었다. 내년 달력에는 2월의 모델이다. 사와이리 상무는 "우리 팀과 공식 계약은 내년 여름까지다. 유럽으로 가겠다면 억지로 잡을 수 없지만 최대한 좋은 조건을 제시해 붙들고 싶다"고 말했다.

반면 안정환은 느긋하다. 잉글랜드·스페인 등 유럽 3개 팀과 이적 협상을 진행 중이다. 조건이 맞으면 가고, 아니면 내년 여름까지 남을 수도 있다.

어디선가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나왔다. 이탈리아에서 '길잃은 염소'취급을 받았던 안정환은 만화 '캔디 캔디'의 원산지 일본에서 행복한 '테리우스'로 돌아와 있었다.

시미즈=정영재 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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