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흔 인터뷰] “대호야 ~ 타격상 내 것까지 먹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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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호야, 다 쓸어버려라. 내가 양보하마.”

마음은 무겁지만 표정은 여전히 밝았다. 불의의 부상을 당한 롯데 홍성흔이 17일 SK전이 열린 인천 문학구장에서 왼손에 반깁스를 한 채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인천=뉴시스]

홍성흔(33·롯데)이 호쾌하게 웃는다. 팀 후배 이대호(28)는 “목소리 들어보니 당장 뛰어도 되겠네요. 준비하시죠”라고 맞받아친다. 홍성흔의 주위에는 여전히 웃음이 넘쳐났다.

17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만난 홍성흔은 왼손을 반깁스한 상태였다. 그는 이날 1군 엔트리에서 빠졌지만 팀과 동행했다. 홍성흔은 15일 광주 KIA전에서 투수 윤석민의 공에 왼손등을 맞아 금이 갔다. 일러야 4주 후에나 그가 타석에 들어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올 시즌 홍성흔은 타율 3할5푼6리(2위)·26홈런(공동 2위)·113타점(1위·이상 17일 현재) 등 최고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2년 연속(2008, 2009년) 타격 2위의 설움을 털어낼 수 있는 기회였다. 홍성흔은 “칼을 뽑았는데…. 타이틀 획득 여부를 떠나서 결과를 확인하고 싶었다”고 아쉬워하면서도 “이대호가 타격 부문을 모두 휩쓸었으면 좋겠다”고 팀 후배를 독려했다.


그에게는 자신의 손등을 맞힌 윤석민(24)도 ‘아끼는 야구 후배’다. 홍성흔은 “윤석민은 악의적으로 그런 공을 던질 후배가 아니다. 윤석민이 전화를 했고, 이종범 선배와 김상훈(이상 KIA)도 안부를 물었다. 역시 야구계에는 의리가 살아있다. 롯데 팬들도 너그럽게 이해해줬으면 한다”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딸 화리(5)를 떠올리면 여전히 마음이 아프다. 그는 “화리가 울었다고 하더라. 아파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아버지…. 딸에게는 미안한 마음뿐이다”라고 안타까워했다. 다음은 홍성흔과의 일문일답.

-공에 맞은 순간을 떠올리자면.

“다른 때와 다르더라. ‘갔구나’라고 생각했다. ‘뼈가 부러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는데 다행히 금이 가는 정도였다. 4주 후에 1군으로 올라올 수 있을 것 같다.”

-윤석민과는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16일 석민이가 전화해 ‘선배님, 죄송합니다. 밸런스가 안 맞아서 제구가 안 됐습니다’라고 사과했다. 나도 ‘경기를 하다 보면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신경 쓰지 말라’고 답했다.”

-부상 중에도 1군과 동행하기로 했는데.

“경기를 보게 되면 ‘나도 치고 싶다’는 생각에 휩싸일 것이다. 나처럼 혈기왕성한 타자라면 더 견디기 힘든 일이다(웃음). 하지만 (제리 로이스터) 감독께서 나를 재활군에 내려보내지 않은 이유가 있다. 내 역할은 공격력 강화와 팀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당분간 배트는 휘두를 수 없지만 팀 내 고참으로서 해야 할 일이 있다.”

인천=하남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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