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군사독재자 네윈 사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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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미얀마의 전 군사독재자 네윈(사진)이 5일 숨졌다. 91세.

지난 3월 사위와 손자들의 쿠데타 미수 사건을 계기로 딸 집에서 가택연금 중이던 네윈은 이날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망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그는 지난해 3월 비교적 건강해 보이는 모습으로 대중 앞에 나타난 것을 마지막으로 줄곧 병원 신세를 졌으며, 지난해 9월 심장마비 증세를 보인 뒤부터는 맥박조정기를 착용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 자신이 국가와 동일시될 만큼 미얀마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네윈은 1960년대부터 80년대에 걸쳐 사실상 쇄국주의라고 할 수 있는 '버마식 사회주의'를 구축, 미얀마의 경제파탄을 초래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1910년 미얀마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 무역상의 아들로 태어난 네윈은 29세 때인 41년 미얀마 독립투쟁의 영웅 아웅산 장군이 이끄는 무장단체 '30명 동지그룹'에 가담, 반영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48년 독립 후 내무·국방장관을 지냈고, 62년엔 쿠데타를 일으켜 우누 총리를 축출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그는 71년에 미얀마를 '버마 사회주의계획당'이 이끄는 일당 독재 국가로 만들어 쇄국정책을 채택, 서방 사회의 견제를 받았다. 74년엔 헌법을 개정해 대통령에 취임했고, 81년 대통령직을 우산유에게 물려준 뒤에도 당 총재직을 고수하며 실권을 유지했다.

80년대 미얀마에서 발생한 대규모 민주화 시위는 폐쇄적인 독재정권 아래에서 초래된 경제난 때문이었다. 아웅산 수치 여사를 앞세운 시위대가 밤낮으로 민주화를 외치자 네윈은 시위대를 향해 "군대가 총을 쏠 때는 맞히기 위해 쏘는 것"이라고 극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철권통치로 일관했던 그도 결국 국내외의 거센 압력에 굴복, 88년 모든 공직에서 물러났다. 네윈은 퇴임 후에도 가족들과 함께 풍족하게 지내면서 상당기간 정·재계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네윈 시대의 종언'을 예고한 사건은 지난 3월 사위인 애조 윈과 손자 아예 네 윈·키아우 네윈 세명이 현 정권에 대한 쿠데타를 기도하다 체포된 일이었다. 미얀마 법원은 지난 9월 이들이 정부 전복을 기도했다며 사형을 선고했다. 미얀마 정치분석가들은 그의 죽음이 미얀마 정국에 큰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박소영 기자

oliv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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