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고 듣는 영화 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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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4면

올 한해 스크린을 수놓았던 아름다운 영화 음악은 어떤 게 있었을까. '접속' '공동경비 구역 JSA' '공공의 적' '밀애' 등의 음악 감독을 맡았던 영화 음악가 조영욱씨가 2002년 가장 인상 깊었던 OST 다섯편을 골라 보내왔다.

◇파이=미국의 신예 감독 대런 아로노프스키가 자연의 비밀을 들춰내려는 인간의 욕망을 다룬 이 영화에서 음악은 영화 이상으로 흥미롭다. 전자음악으로 구성된 사운드 트랙은 진보적인 테크노 사운드로 구성됐다. 20세기의 끝과 21세기의 시작에서 청년문화를 대표할 가장 흥미로운 음악을 듣고 싶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

◇밀리언 달러 호텔=독일 감독 빔 벤더스는 음악 방면에 더 재능이 있지 않을까. 그의 극영화는 보고 싶지 않지만 그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항상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가 음악영화를 만든다면 사람들을 흥분하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 '밀러언 달러 호텔'에선 U2의 보노와 뛰어난 프로듀서이자 뮤지션인 대니얼 라노아의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로드 투 퍼디션='아메리칸 뷰티'에서 쉽게 잊혀지지 않는 선율을 선물했던 토머스 뉴먼의 음악에는 새로운 것과 낡은 것이 공존한다. 이 영화에서도 여러 악기를 이용해 영화를 한층 풍부하게 한다. 그는 소리의 다양함을 통해 낡은 것을 새롭게 한다.(사진)

◇복수는 나의 것=어어부 프로젝트의 음악은 극단을 오간다. 한쪽은 키치적이고 다른 한쪽은 아방가르드적이다. 특히 영화의 막바지와 예고편에 사용된 음악은 주목할 만하다. 경쾌한 리듬에 실린 바이올린 선율은 음악으로 영화를 상상케 한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데이비드 린치의 사운드 트랙에서 나를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그의 독특한 선곡이다. 이미 '블루 벨벳'에서 보여주었던 로이 오비슨의 '인 드림스(In Dreams)'처럼 영화와 전혀 어울리지 않을 듯한 음악을 이용하는 그의 감각은 놀랍다. 너무나 순수하고, 너무나 달콤한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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