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권형' 대통령 뭘 뜻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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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주당 노후현 후보와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가 대선 승리를 위한 공조 체제를 다지고 있다. 그 바탕은 '분권형 대통령제'개헌이다. 내용은 盧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2004년 4월 총선 이후 17대 국회 임기 중 개헌안을 공동 발의, 추진한다는 것이다.

분권형 대통령제는 鄭대표의 작품이다. 여기에 얽힌 '권력 나눠먹기' 논란 때문에 盧후보는 소극적이었다. 그런데 盧후보의 양보는 단일화의 시너지 효과를 살리기 위한 것으로 비춰진다. 그렇지만 그 효과가 개헌 합의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이 문제는 단일화처럼 흥미와 긴박감이 넘치는 승부 게임이 아닌 탓이다. 국가 기본 틀인 헌법 개정은 냉정과 신중함이 요구되는 사안이다.

양당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없애기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헌법 고치기는 까다롭다. 의원 3분의2 찬성→국민투표라는 2단계 장애물을 돌파해야 한다. 양당 구상대로라면 다음 대통령 임기 첫해는 개헌 통과선을 확보하기 위해 총선 승리에, 그 다음 1년부터 개헌 추진에 힘을 쏟아야 한다. 권력은 미묘한 것이어서 집권 후 그 약속은 흐지부지된다. 3당 합당 내각제, DJP 내각제 약속이 휴지 조각이 된 게 사례다. 때문에 실천 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검증과 토론없이 양당이 개헌 카드를 서둘러 내놓았다는 논란을 낳는 것이다.

그 논란에는 선거 공조의 순서도 있다. 민생·대북정책 등 양당의 엇갈리는 정책 조율이 먼저인데 개헌부터 합의한 것은 순서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는 DJP 정부의 국정 혼선이 정책 조율을 생략한 개헌 논의 탓이었다는 경험에서 온다. 통합21 측이 단일화의 반대 급부 차원에서 개헌 문제에 접근하는 인상을 주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선거 공조의 출발은 정책 조율이다. 단일화 효과에 집착해 국가 명운이 걸린 개헌을 공조의 우선 고리로 써먹는다는 논란을 잠재우려면 양당은 설득력있는 실천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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