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특구]토지 50년 임대·상속권 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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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판문군·읍 폐지

일부 특구에 편입

북한이 개성공업지구 지정과 관련해 개성직할시의 일부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판문군과 판문읍 지명(地名)을 없애 버렸다. 북한이 김일성·김정일 우상화를 위해 지명을 바꾼 경우는 있지만 특정 지명을 아예 없앤 것은 이례적이다. 개성시 면적의 24%를 차지하는 판문군을 없앤 것은 특구 설정을 효율적으로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지역이 갖는 역사적인 특수성을 배경으로 꼽는 시각도 있다. 민족분단 상징인 이 곳을 지도에서 지워버림으로써 개성공업지구를 '민족 경제의 중심지'로 키우겠다는 북한 당국의 뜻이 숨어 있다는 얘기다.

27일 선보인 '개성 공업지구법'은 개성시 일대를 국제적인 공업도시로 키우기 위해 북한 당국이 고심한 흔적이 그대로 배어 있다.

고위 당국자는 "지난 9월 내놓은 신의주 특별행정구가 중국 당국의 양빈(楊斌)초대장관 구속으로 된서리를 맞으면서 북한 측이 개성공단에 더욱 애착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어떤 내용 담겼나=공업지구 내 상품가격과 서비스요금 등을 국제시장 가격에 준해 정하도록 하는 등 국제기준에 맞는 특구를 지향한 점이 주목된다.

▶외화의 자유로운 반출입 ▶신용카드 사용 ▶투자재산 보호 ▶상속권 보장 ▶50년 토지임대 등 기업활동의 자율성도 확대했다. 통신수단의 자유로운 활용과 광고활동을 허용한 것은 남한 기업의 투자유치를 겨냥해 빗장을 푸는 조치로 풀이된다.

기업소득세율을 14%로 하되, 사회간접자본(SOC)이나 경공업·첨단과학기술 부문은 10%로 정한 것은 이 분야의 투자를 적극 유치하겠다는 뜻이다. 당국자는 "중국·베트남이 15∼17% 수준인 점을 감안해 경쟁력을 갖추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측이 중앙지도기관과의 접촉창구인 공업지구 관리기관의 책임자(이사장)를 남한 인사가 맡도록 하고 구성원도 개발업자가 추천토록 해 남측의 참여 폭을 넓힌 점도 눈에 띈다.

또 노동력은 원칙적으로 북한 주민을 채용토록 해 최대 17만명에 이를 고용인원의 인건비 수입에 기대를 걸고 있음을 내비쳤다.

◇급물살 타는 남북 경협 프로젝트=핵 문제로 인해 어수선한 상황에서 금강산 관광특구 발표 이틀 만에 개성공업지구법을 내놓는 등 북한 당국이 경협사업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27일에는 금강산 육로관광과 개성공단 건설의 걸림돌이던 지뢰제거 작업을 재개하겠다고 통보해 오는 등 의욕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김대중 정부 임기 말에 어떻게든 경협사업을 제 궤도에 올려놓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풀이한다. 실제 공업지구법은 '개발업자는 하부구조 대상건설이 끝나는 차제로 공업기구개발 총계획에 따라 투자기업을 배치해야 한다(18조)'고 못박는 등 잰걸음을 하는 분위기다.

이는 1991년 12월 설정한 나진·선봉 경제무역지대가 유명무실해지고 신의주 특구가 좌초한 상태에서 금강산 관광특구와 개성 공업특구를 북한경제 회생의 양대 축으로 삼으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7·1 경제개선 관리조치를 계기로 모처럼 탄력을 받던 개혁·개방 움직임을 중단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극복해야 할 문제=장밋빛 구상에 그치지 않으려면 외국의 여타 특구에 비해 경쟁력 있는 임금·분양가를 통해 투자유치를 이뤄야 한다. 26일 공개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조사 결과 74개 남북교역 업체 중 개성공단 입주에 긍정적 반응을 보인 곳이 21.6%에 불과했다는 점은 사정이 녹록지 않음을 보여준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 노동자의 월 임금은 나진·선봉(1백10달러)보다 낮은 1백달러 미만으로 합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여 중국 선전(深·1백10∼1백50달러)특구 등과 경쟁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개발지역 내 북한 주택·시설의 이전비용을 남측 개발업자가 부담토록 한 점은 분양가격의 상승을 초래할 부담요인이다. 또 기준화폐를 달러가 아닌 유로화로 쓰자고 북한이 고집할 경우 뜻밖의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무엇보다 핵개발 문제로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하지 못하면 공단 개발에 필수적인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기 어렵다.

이영종·고수석 기자

yj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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