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한인방송사를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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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국가 미국은 많은 방송 채널을 가지고 있다. TV의 경우 CBS·NBC·ABC 등의 지상파와 HBO 등 케이블 채널까지 1백여개 채널에 이르고, 위성방송은 대략 2백50여 채널이 전파를 쏘고 있다.

당연히 채널 간, 프로그램 간의 경쟁도 매우 치열하다. 미국 부동의 시청률 1위를 자랑하는 프로그램은 CBS의 수사극인 'C.S.I 과학수사대'인데 평균 시청률은 18%에 이른다. 수백개의 채널과 수천개의 프로그램 가운데 이 정도의 시청률을 차지한다는 것은 인기가 대단하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방송에서 시청률 40% 이상의 인기랄 수 있다. 이런 채널 홍수와 경쟁의 와중에 한인 방송도 있다. 모두 18개인 지상파 채널 중 UHF 17번을 틀면 반가운 우리말이 들린다. 뉴욕의 한인 동포들은 25만명 정도. 전세계 각종 인종들이 모여사는 메트로폴리스인 뉴욕시 전체인구(약 8백만명)의 3% 남짓하니 적지 않은 편이다. 뉴욕에서 하루 종일 한국어로 방송하는 유일한 방송사는 KTV. 뉴욕시와 뉴저지를 권역으로 하는 '뉴욕한인 방송사 KTV'는 동포들이 모여 사는 플러싱 중심가에 자리하고 있었다.

1995년 개국한 사무실은 상주하고 있는 직원들이 많은 데다, 신문 자료 등이 넘쳐 마치 마감을 앞 둔 신문사 편집국처럼 어수선한 분위기다. 모두 50여명의 인력이 '라디오 서울'이라는 라디오 채널 1개와 TV 채널 2개를 운영하고 있었다. 라디오의 경우 40여명의 제작인원이 투입되어 하루 24시간을 자체 제작하여 방송한다. 이민 온 성우 장미선씨와 아나운서 양승현씨의 귀 익은 목소리엔 친근감이 묻어 나온다. TV의 경우 원 맨 밴드 식의 VJ(비디오 저널리스트)인 PD 3명이 조그만 편집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일일이 손으로 찍으며 편집하는 일대일 아날로그 방식 편집이 아니라 컴퓨터를 이용한 디지털 방식으로 제작과정을 단순화하여 나름대로 효율을 꾀하고 있었다. 자체제작은 일부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본국 방송사(90% 정도가 KBS 프로그램)와의 계약에 의해 서울보다 45일 늦게 틀어주는 방송이었다.

때마침 저녁 9시 현지뉴스 녹화와 라디오 '시사자키'의 녹음과정을 볼 수 있었다. 저녁 9시 뉴스의 경우 앵커의 진행멘트만 사전에 녹화하여 비디오클립 등을 붙여 생방송으로 내보내는 특이한 제작 방식이었다.

제작국 사무실에선 십 수년 전에 서울에서 활약하던 '쉐그린'과 '새샘트리오' 멤버 전언수씨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지금 라디오 진행자로 변신하여 활약 중이었는데 예전 모습 그대로다. 이상하게도 미국에선 사람들이 제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인다. "한국서처럼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아 그렇게 보인다"는 게 그의 대답이다.

권영대 사장은 성수대교 참사 후 5만 달러의 예산을 투입하여 60분물 다큐를 제작했던 공학도 출신 PD. 그는 "비록 작은 방송사지만 한인들에게 꼭 필요한 방송이란 긍지로 일한다"면서 "우리 방송의 송신 안테나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 있다"고 자랑했다. 인종전시장인 뉴욕에서 24 시간 '우리 방송'을 통해 동포들의 정서적 통합매체가 되고 있는 방송사, 그리고 한국어 방송을 통해 민족적 유대감과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한인들. 맨해튼을 지나면서 바라 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의 KTV 송신 안테나가 유난히 높아 보였다.

MBC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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