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화 협상 52일 드라마]여론조사등 잇단 암초 盧·鄭 양보하며 돌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헌정사상 최초로 성사된 여론조사 방식에 의한 민주당 노무현(盧武鉉)단일후보 탄생까지의 과정은 말 그대로 숨막히는 한편의 드라마였다. 지난 9일 단일화 협상팀이 처음 무릎을 맞댄 이후 24일의 후보 결정까지, 양측은 피말리는 보름간의 협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교착→대화 재개가 반복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몇차례나 협상이 교착상태로 빠지면서 무산 직전까지 가는 위기를 겪었고 그때마다 두 후보는 단일화를 요구하는 여론과 자신의 정치적 이해 사이에서 갈등했다.

첫 신경전은 단일화 방식을 둘러싸고 벌어졌다. 경선이냐, 여론조사냐가 이슈였다. 이 고비는 盧후보가 풀었다. 국민경선을 주장하던 盧후보가 '여론조사 방식 전격 수용'을 선언하면서 단일화의 물꼬를 텄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여론조사 대상을 놓고 盧후보는 일반 국민만을,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후보는 일반 국민과 대의원을 절반씩 섞자고 고집해 교착상태에 빠졌다.

무망해 보이던 단일화는 盧·鄭후보의 12일 심야 담판으로 결판났다. 鄭의원이 일반 국민만을 조사 대상에 넣는 것으로 한발 물러남으로써 단일화에 한발짝 가까이 다가가게 된 것이다. 이날 회동에선 ▶TV토론을 실시하고▶지는 쪽이 승자의 선대위원장을 맡아 상호 공조한다는 등 8개항에 합의하는 망외의 소득도 올렸다.

협상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후속 실무회담에선 여론조사 날짜·기관·설문 내용 등을 속속 타결지었다. 하지만 단일화 합의 이후 각 언론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오히려 鄭후보가 盧후보에게 밀리는 지지도 역전현상이 나타나면서 또 한번 위기를 맞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합의 내용 일부가 언론에 보도된 것과 관련, 통합21 측이 민주당쪽에 유출 책임을 돌리면서 파국을 맞는 듯했다. 2위에서 3위로 밀려난 鄭후보측은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후보 지지자들이 '본선에서 상대하기 쉬운 후보를 선택하기 위해 허위답변하고 있다'는 논리를 들었다. 이른바 '역선택' 논리다.

문제가 꼬이면서 협상의 주역들도 물러났다.'이해찬(李海瓚)-이철(李哲)'라인이 '신계륜(申溪輪)-민창기(閔昌基)'라인으로 교체됐다. 역선택 방지책이 막판 쟁점으로 대두되면서 양측의 다툼도 치열해졌다.

새 협상팀들은 지난 20∼21일 27시간에 걸친 마라톤 협상 끝에 또 한번의 대타협을 이끌어냈다. ▶여론조사의 설문 항목에 '이회창 후보에게 맞설 경쟁력있는 후보로 누구를 지지하겠느냐'는 항목을 추가하고▶설문자 중 李후보를 지지한다는 답변은 폐기하는 식의 안전판을 마련한 것이다. 盧후보측이 鄭후보쪽 요구를 대폭 수용한 결과다.

파경 직전까지 갔던 단일화 협상은 盧후보가 지난 23일 "鄭후보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겠다"고 밝히면서 돌파구가 마련됐다. 선관위에 의해 1회로 횟수가 제한되긴 했지만 두 후보간 TV토론도 벌였다.

盧후보가 단일후보를 끝내 따낸 데 대해 정치권에선 "3위로 처져있던 盧후보가 여론조사 방식을 전격 수용하는 등 고비마다 승부수를 던지는 정치적 결단을 내리는 모습을 보인 게 결실을 본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정민 기자 jmlee@joongang.co.kr

단일화 협상 일지

10.4 민주당 내 비노·반노 의원 34명 후단협(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 결성

11.4 후단협 의원 집단 탈당 시작

노무현,"경선 통해 단일화하자"

11.5 국민통합21 창당

11.8 정몽준,"국민경선도 검토"

민주당 단일화 협상팀 구성

11.9 양당 협상팀 상견례, 첫 협상

11.10 盧,"여론조사도 수용"

11.11 양당 협상 재개

盧,"일반 국민 대상 여론조사"

鄭,"양당 대의원 대상 여론조사"

11.12 鄭, 후보 회담 제의

11.15 盧-鄭 회담,"일반 국민 대상 여론조사로 단일화"합의

11.17 盧·鄭측 협상단 단일화 세부 합의안 발표 "3일간 토론 후 여론조사"

11.18 협상내용 언론 유출 이유로 鄭측 재협상 요구, 통합21 협상단 사퇴

11.19 鄭측 여론조사 방식 전면 재검토와 이해찬 의원 협상단 배제 요구

11.20 새 협상단 협상 재개

11.22 단일화 재협상 타결

TV토론 실시

11.24 여론조사

단일 후보 확정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