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 음악 속에도 깨달음 있어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열여섯살에 기독교 신자이던 부모의 만류를 뿌리치고 출가, 요즘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복작거리는 동네인 강남구 신사동 한 복판에 '마음 고요'라는 이름의 선방을 운영 중인 정목(正牧) 스님이 최근 책을 출간했다.

지인들이 보내온 편지에 대한 답장, 어려운 처지에 빠진 주변에 용기를 주기 위해 썼던 위로의 글 등 편지글들을 모은 『마음 고요』(학고재)가 그것이다.

지금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졌지만 스님은 10여년 전 불교방송이 개국했을 때 승려로서는 처음으로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 DJ를 맡는 '파격'으로 관심의 초점이 됐었다.

신문·방송 인터뷰 '0순위'였고 책 출간 제의도 잇따랐다.

당시에는 응하지 않았다가 이번에 책을 내게 된 동기와 책이 꿰고 있는 깨달음을 직접 듣기 위해 스님을 만났다.

첫 인상은 출가 과정의 극적 반전이나 아이러니와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백자부(白磁賦)''사향(思鄕)'이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시조시인 김상옥 선생이 '상모(相貌·얼굴의 생김새)가 알토란이나 깎아놓은 밤'이라고 묘사한대로 동글동글 차분한 외모다. 그러면서도 종교와 인생의 진리를 말할 때는 눈빛이 단호하다.

신간의 빛깔은 다양하다. 또 눈높이가 불교와 상관없는 일반인 수준으로 낮춰져 있어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가령 밥을 먹거나 허드렛일을 하다가 느닷없이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마치 유체이탈이라도 하듯 명상에 빠지곤 하는 동료스님에게 '하다 멈춰'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놀림감으로 삼았다는 대목은 실소를 자아낸다.

출가 직후 고된 절 생활을 몸이 따라가지 못해 호된 몸살로 앓아누웠을 때 밤늦게까지 간호하던 은사 스님이 '아가, 아프지 마라. 맛 있는 것 뭘 사줄까?'라고 묻자 '박카스'라고 답했다는 장면은 애잔하게 다가선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헤매던 이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썼던 글들은 십중팔구 최루성이다.

반면 선승들의 일화, 화두(話頭)를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는 묵직하다. '줄탁동시(啄同時)'의 화두는 병아리가 알껍질을 깨고 나오기 위해서는 병아리가 알속에서 껍질을 쪼아대는 '줄'과 어미닭이 밖에서 껍데기를 쪼아대는 '탁'의 노력이 안팎에서 동시에 행해져야 한다는 뜻이다.

구도든 세속적인 목표든 자기 변화를 통한 달성은 지난할 것이다.

좋은 인연을 만나기는, 바다 속 눈먼 거북이가 1백년 만에 숨 한번 크게 쉬기 위해 물위로 올라올 때 바다를 떠다니는 구멍뚫린 널빤지 구멍에 목을 걸치는 것만큼 어렵다(盲龜遇木·맹귀우목)는 경전 대목도 소개된다.

록 음악의 본산인 우드스탁을 찾아가고 단풍에 감격하는 감성과 여성적인 감수성은 감칠맛을 더한다.

결국 다양한 빛깔을 지닌 신간의 지향은 시원한 한줄기 바람이 가져다 줄 것 같은 선선한 휴식, 그런 휴식을 통한 마음의 고요한 평정 상태에 닿아 있다. 속도와 능률만을 고려하는 시장(市場)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고요한 마음'은 절실하다.

스님의 선방 '마음 고요'는 매주 일요일 오전 명상 프로그램을 일반인에게 무료로 개방, 기분좋은 휴식처 역할을 이미 하고 있다.

신준봉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