手談으로 푼 대역전 제1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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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면

제9보 (188~215)=모든 승부에는 철칙이 하나 있다.'이긴 것에 만족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승자가 승리와 더불어 상대에게 치욕을 안겨주려 한다.이 미묘한 실전심리가 변화를 만들어낸다. 이 판은 曺9단에겐 가도가도 끝없는 뜨거운 사막처럼 절망적이다. 그러나 이 판은 머지않아 폭풍이 몰아치는 황야로 변한다. 그것이 진정 미스터리였다.시간이 조금 흐른 지금 가만히 돌이켜보면 그 미스터리의 첫번째 단서는 바로 뤄시허9단의 실전심리 속에 숨어있었다. 지금부터 바둑사에 길이 남을 대역전의 과정을 수담(手談)으로 풀어보자.

188=뤄시허는 귀에 수가 있으니 지키라고 귀띔한다.

189=曺9단은 "나는 버린 몸이니 마음대로 하라"고 대답한다.

190,192=7집 끝내기. 이 수로 귀가 빅이 됐다. 뤄시허는 귀를 가일수하지 않으면 이번엔 진짜 가만두지 않겠다고 위협한다.

193=曺9단은 죽이든지 살리든지 알아서 하라며 계속 집을 벌어들인다.

曺9단이야 "어차피 버린 몸"이니 무엇이 두려울까. 하지만 曺9단의 이 철저한 저항과 배짱에 뤄시허가 "혼내주고 말겠다"는 생각을 품게 된 것이다.

曺9단이 205, 207로 또다시 집을 챙기자 뤄시허9단은 208, 210으로 다시금 귀를 두어왔다.A로 패를 들어가 다 잡아버리겠다는 집요한 위협이다. 그러나 이 두수는 나중에 황금송아지가 생길지언정 우선은 공배다. 曺9단은 벼랑 끝에 서서도 흐흐흐 웃으며 계속 집을 벌어들였고(이것도 일종의 '흔들기'일까) 뤄시허는 이를 갈며 결정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박치문 전문기자

dar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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