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아시아 家電시장에 승부 걸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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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일렉트로룩스의 한스 스트라버그 사장은 올해 초 취임한 이래 지난달엔 일본 기자단을, 이달엔 한국과 대만 주요 언론사의 기자들을 스웨덴 스톡홀름 본사로 초청했다. 그리고 요한 비거 국제담당 수석부사장을 비롯한 그룹 주요 임원들에게 아시아 기자단을 상대로 회사를 상세히 설명하도록 했다. 그는 신흥 아시아 시장을 얼마나 공략하느냐에 회사의 성장과 쇠락 여부가 달려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그는 최고경영자(CEO)가 돼 회사의 흐름을 전체적으로 파악한 뒤 맨 처음 일렉트로룩스를 알려야 할 지역으로 아시아를 선택했다.

그는 아에게(AEG)·자누시 등 이미 일렉트로룩스의 몇몇 브랜드가 한국 수입가전 시장에서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이미 수위를 다투는 유럽·북미뿐 아니라 아시아 시장에서도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가전 업체가 되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일렉트로룩스 본사의 펜트하우스에서 만난 스트라버그 사장은 이런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 답변하는 중간중간에 그는 아시아 담당 임원과 스웨덴어로 속삭이며 적당한 대답을 찾아내면 다시 보충 답변을 하는 등 시종 진지했다.

-아시아 지역에는 첨단기술을 갖춘 가전 브랜드가 많고 제조원가도 낮다. 이들과의 경쟁전략은.

"가격면에서 경쟁할 만하다. 유럽은 인건비가 가장 비싼 지역이다. 그러나 우리는 비용을 아끼는 방법을 찾아내고 있다. 예를 들어 청소기 모터를 연간 1백50만대 생산하는 공장을 직원 30명이 움직이고 있다. 또 모든 공장이 5∼15분 만에 다른 제품 모델로 전환할 수 있는 유연한 공정을 자랑한다. 공장은 창고가 아니다. 주문과 정확한 계획에 따라 생산해 재고 비용을 낮추는 등 생산 공정의 혁신으로 제조 비용을 최대한 낮추고 있다. 또 유럽뿐 아니라 생산 공장을 중국·인도 등 아시아와 남미 지역까지 전세계에 골고루 두고 있다. 현지에서 원하고, 현지에 맞는 제품을 가까운 곳에서 생산해 공급하기 위해서다. "

-한국 가전 업체는 인터넷 냉장고를 세계 시장에 먼저 출시하는 등 가전제품의 네트워킹화에 집중하고 있다. 일렉트로룩스가 가전제품의 정보화에 뒤떨어진 것은 아닌가.

"현재 한국 기업이 내놓은 인터넷 냉장고 개념을 가장 먼저 만든 게 우리 회사다. 5년 전 냉장고에 스크린을 붙여 인터넷도 할 수 있도록 하는 혁신적인 상품이었는데 유럽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아직은 시장이 준비돼 있지 않다. 소비자가 원하지 않는 상품은 내놓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의 원칙이다. 그러나 현재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로 가전 기기를 제어할 수 있는 네트워킹 시스템은 이미 개발했고, 꾸준히 발전시키고 있다."

-아시아 지역 가전 시장을 어떻게 전망하며, 공략을 위한 구체적인 전략은.

"올해 한국에 현지 법인을 설립했고, 시장을 연구 중이다. 아시아 시장은 지난 3년간 매출액이 연간 두배씩 성장한, 가능성이 큰 신규 시장이다. 아시아인들은 드럼식 세탁기·빌트인 가전 등 유럽식 가전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적극적이다. 특히 일본에 우리 로봇 청소기인 '트릴로바이트'를 출시했는데 소비자들의 반응이 폭발적이다. 아시아 소비자들은 새로운 상품에 대한 소화능력이 대단히 빠르다. 아시아 시장 확대를 위해 이 지역 전체 매출액의 8%를 마케팅에 쓰고 있다. 광고부터 직접 판매까지 영업전략을 세밀하게 짜고 있다."

-한국에 투자할 계획은.

"현재 중국 상하이(上海)에 디자인센터가 있다. 이곳에선 그 지역에 맞는 디자인을 개발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한국에는 아직 구체적인 투자계획이 없다. "

-유럽·미국 등 선진국에선 가전을 사양산업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사업을 가전에 집중한 이유는.

"강력한 브랜드가 있는 한 가전은 사양산업이 아니다. 최근 소비자들은 가전제품을 단지 기능성 제품으로 보지 않는다. 자신의 품위에 맞는 브랜드를 선택하려는 계층도 늘고 있다.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소비자들이 자랑하고 싶은 브랜드가 되면 그것이 성장품목이 된다. 우리는 소비자들의 요구를 정확하게 파악해 제품화하는 능력을 개발할 것이다. 혁신적인 제품을 꾸준히 출시하면서 브랜드를 관리하고 있다."

-연구·개발(R&D)에 어느 정도 치중하고 있나.

"가전 시장의 마켓 리더는 제품을 연구소에서 개발하는 게 아니라 소비자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개발해야 한다. 우리는 소비자가 원치 않으면 만들지 않는다. 연구소에는 1천여명의 연구인력이 있으며, 그들은 실험실에만 머물지 않는다."

스톡홀름=양선희 기자

sunny@joongang.co.kr

한스 스트라버그 사장은 …

한스 스트라버그(45) 사장은 올해 초 1백1년의 역사를 지닌 이 회사에 활력을 불어넣을 적임자로 선발됐다.

스웨덴 샬머스공과대에서 과학기술 석사 학위를 딴 뒤 1983년 일렉트로룩스에 입사한 정통 일렉트로룩스 사람이다. 그는 주로 외부 인사가 영입되던 회사 CEO 자리에 드물게 내부에서 발탁됐다.

그는 98년 소형가전사업부 수석부사장으로 그룹 경영에 본격 합류했다. 그리곤 당시 사장이던 마이클 트레쇼(현 에릭슨 CEO)의 구조조정을 도우면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스트라버그 사장은 전임 사장이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2만여명의 인원을 감축하고 불필요한 사업부를 잘라낸 뒤 사령탑을 물려받는 행운도 누렸다.

CEO가 된 그에겐 어려운 과제가 떨어졌다. 기업 분위기를 쇄신하고 집중된 역량을 바탕으로 더 큰 발전을 이뤄내야 했다. 그는 최근 오랫동안 수십개로 나눠져 있는 브랜드들을 일렉트로룩스라는 브랜드로 모으는 작업에 들어갔다. 과거의 CEO들은 기업 인수·합병 실적으로 폼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오직 청소기와 주방 가전제품을 세계 시장에서 얼마나 많이 파느냐로 평가받게 됐다. 그는 요즘 아시아권 등 신흥 시장을 개척하고 제품을 더 많이 판매하는데 온 힘을 쏟고 있다.

그는 취임 후 기업의 마케팅 슬로건으로 '세계에서 첫째로 선택되는 상품이 되자'를 내걸었다. 치열한 가전시장 경쟁에선 '1등만이 살아남는다'는 시장원리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1등 전략을 위해 조직을 젊게 바꾸고 있다. 임원급을 40대로 물갈이하고 있다. 그는 '젊은 피'를 수혈해 1백살이 넘는 '고목'에서 새 싹이 돋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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