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받는 은행 개인고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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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은행들이 정부의 가계대출 억제방침에 따라 소매영업이 위축되자 대출금리를 올리고 예금금리를 내리는 방식으로 타개책을 찾고 있다. 이 때문에 예금이자 수입은 줄고 대출문턱은 높아지는 등 가계가 이중부담을 안게 됐다.

은행들의 일방적인 금리조정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가계대출에 대한 대손충당금을 더 쌓게 하고 자기자본비율 산정 때 가계대출의 위험 가중치를 높인 것은 은행들에 비용증가 요인이다. 따라서 비용이 늘어난 만큼 대출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고 대출금리 인상만으론 모자라 예금금리도 일부 낮출 수밖에 없다는 해명이다.

가계대출의 억제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억제에 따른 비용증가 및 수익성 악화를 고객들에게 떠넘기는 것은 실로 부당하다. 뿐만 아니라 대출한도 축소를 계기로 아파트 분양대금 잔금대출이 거부당하는가 하면 이자를 꼬박 내고도 주택담보 대출의 만기 연장을 못 받는 사례도 속출한다고 한다.

신용카드 대출한도 축소와 함께 이처럼 갑작스럽게 가계 돈줄을 죄면 가계의 금융비용 부담이 증가하고 함께 가계부실도 늘어날 것이 뻔하다. 예금금리 하락은 내리막 추세인 저축률을 더욱 떨어뜨리고 시중 부동자금을 부동산 등 비생산적인 분야로 내몰 우려 또한 크다.

가계대출을 줄이려면 정부가 콜금리 등을 단계적으로 올려 시중의 유동성을 조절했어야 했다. 금리조정 시기를 놓치고 지금 와서 은행들만 들볶으니 이런 부작용들이 빚어진 것이다. 경기가 움츠러들고 금리조정 등 거시정책 변경이 어려운 상황일수록 가계대출 억제는 부작용이 최소화되도록 강도나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 갑작스러운 가계금융 긴축에 따른 신용불량자 양산(量産)사태는 막아야 한다.

가계대출 억제를 핑계로 은행들이 수익 높이기에만 열중하는 것은 지나치게 안이한 발상이다. 은행들도 이제 '땅 짚고 헤엄치기식' 주택담보 가계대출에 의존하는 타성에서 벗어나 경영합리화로 비용을 절감하고 기업대출 수요개발에 적극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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